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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시선] 사말(四末)의 노래 / 이효석 신부

이효석 토마스아퀴나스 신부(가톨릭신문 편집주간),
입력일 2023-10-31 수정일 2023-11-01 발행일 2023-11-05 제 336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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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말(四末)의 노래’를 아십니까? 사말이란 죽음과 심판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말합니다.

‘사말의 노래’는 작고하신 윤형중 신부님(마태오, 1903~1979)께서 1952년 11월 위령성월에 발표하신 시조로, 신부님께서는 머리말에서 이 시조를 발표한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모든 언행에서 너의 마지막 때를 생각하여라. 그러면 결코 죄를 짓지 않으리라.’(집회 7,36) 사람은 누구든지 한 번은 죽고, 심판을 받아야 하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네 가지 마지막 문제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사형 선고를 받고 나왔다. 이 사형 집행 기일은 날이 갈수록 우리에게 육박한다. 여기에 우리의 끔찍한 영원 문제가 달려 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한다면 죄를 범할 수도 없고, 냉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무관심하고, 심지어는 이것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임종에 가까운 중병 환자가, 자기 병이 중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그 심리와 공통된 점이 있지 않을까?”

시조는 “1. 백년천년 / 살듯이 / 팔딱거리던 / 청춘이라 / 믿어서 / 염려않던몸 /거기에도 / 죽음은 / 갑자기덤벼 / 용서없이 / 목숨을 / 끊어버린다”로 시작해서 “120. 주성모는 / 우리를 / 굽어보소서 / 세상에 / 천만번 / 태울지라도 / 후세상엔 / 우리를 / 용서하소서 / 후세상엔 / 우리를 / 용서하소서.”로 끝맺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조의 60절과 71-72절이 마음에 와닿아 많은 묵상을 했습니다.

“60. 천주공경 / 그처럼 / 푸대접하고 / 수계범절 / 그처럼 / 인색하더니 / 그만둬라 / 이제는 / 청산해보자 / 참아오던 / 천주는 / 팔을드셨네.”, “71. 좋은널을 / 사오라 / 좋은염포를… / 성대하게 / 차려라 / 장례절차를… / 부질없는 / 공론을 / 하지들마소 / 온세상을 / 다준들 / 소용이되리? 72. 떡을해라 / 술 해라 / 떠들썩하네 / 나만죽고 / 저희는 / 죽지않을듯 / 술과안주 / 나누기 / 정신들없네 / 미련하고 / 철없는 / 장래송장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음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대상이 나라는 것과, 또 내가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윤형중 신부님의 말씀대로 죽음은 갑자기 덤비며 우리의 목숨을 끊어 버립니다.

또한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화를 모으면서도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며 언제 하느님께서 나를 불러 가실지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은 죽음을 먼 훗날의 일로 생각하지 말고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 생각하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내가 내일 하느님의 심판 앞에 선다면,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차고 넘치는 금은보화,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 드높은 명예가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줄까요? 아니면 사랑과 나눔, 자비와 용서가 천국으로 나를 인도해줄까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은 그 정답을 알고 계실 것이고, 그대로 살아간다면 하느님 나라는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사말의 노래’ 중 아래 구절은 오늘날 때때로 하느님을 잊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활하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20. 성세받은 / 교우라 / 연도들하네 / 제대위의 / 불켜고 / 미사드리네 / 받을준비 / 됐어야 / 그은혜받지 / 시체에게 / 음식도 / 소용이되나?”

이효석 토마스아퀴나스 신부(가톨릭신문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