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마테오 추피 추기경도 교황의 눈 밖에 날까?

최용택
입력일 2024-06-12 수정일 2024-06-18 발행일 2024-06-23 제 339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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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이탈리아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 중,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 마테오 추피 추기경(가운데)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을 듣고 있다. 사진 CNS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이자 볼로냐대교구장인 마테오 추피 추기경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임을 받던 측근들처럼 교황의 눈 밖에 날까? 발칙한 질문이긴 하지만, 추피 추기경과 한 이탈리아 정치인과의 대립으로 그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 정치인은 교황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개는 향후 추피 추기경의 교회 내 지위뿐만 아니라 다음 콘클라베의 유력한 후보로서의 지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추피 추기경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면, 추피 추기경도 교황의 측근에서 한직으로 밀려난 다른 추기경들처럼 될 수 있다.

한때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으로 교황청 재정개혁의 첨병으로 나섰던 고(故) 조지 펠 추기경의 날개가 접혔고, 사회정의 분야에서 교황의 고문 역할을 했던 피터 턱슨 추기경은 2021년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장관에서 쫓겨났다. 2023년 국제카리타스 의장직에서 물러난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은 복음화부 장관 대행으로, 로마대리구장이었던 안젤로 데 도나티스 추기경은 내사원장으로 밀려났다.

또 안젤로 베치우 추기경의 경우는 전형적인 예로, 교황청 국무장관으로 교황의 오른팔이었던 그는 직책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추기경으로서의 권리도 박탈당하고 횡령 혐의가 인정돼 5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여러모로 볼 때, 추피 추기경이 이들처럼 밀려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추피 추기경은 교황이 선호하는 산에디지오 공동체 출신이다. 게다가 교황은 2015년 역사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볼로냐대교구장으로 추피 추기경을 임명했고, 2022년에는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임했다. 또 2023년에는 추피 추기경을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결을 위한 평화 특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추피 추기경보다 교황이 신임하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최근 추피 추기경과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총리 직선제 개헌을 두고 공개적인 설전을 벌여 문제가 생겼다. 현재 이탈리아의 총리는 의회에서 선출한다. 이 시스템 때문에 지난 77년 동안 총리가 70번 바뀌는 등 이탈리아가 고질적인 정치적 불안정에 빠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멜로니를 위시한 보수 진영은 개헌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진보 진영은 총리 직선제가 가능하지도 않고 비민주적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추피 추기경은 지난 5월 23일 이탈리아 주교회의 총회 후 연 기자회견에서 몇몇 주교들이 총리 직선제에 “우려했다”고 밝히며 설전을 빠졌다. 그는 “구조적 평형을 위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면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공동선 증진이라는 헌법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파에 휘말리지 않는 결론이 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총리 직선제 논란은 지극히 정파적인 이익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멜로니 총리를 비롯해 개헌을 추진하는 쪽을 비난하는 것으로 비쳤다. 추피 추기경의 발언에 멜로니 총리는 5월 30일 TV 방송을 통해 반박했다. 바티칸시국은 의회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주교들의 이에 대한 언급은 부적절하다고 말이다. 이탈리아 언론은 이 설전을 이탈리아의 최고 정치인과 최고 교회 지도자와의 갈등으로 확대시켰다.

추피 추기경의 입장에서 이 설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지만 멜로니 총리와는 꽤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난해 멜로니 총리와 교황은 로마에서 열린 가정 관련 행사에 함께 참석했는데, 당시 교황은 줄어드는 이탈리아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멜로니 정부의 노력에 찬사를 전했다.

지난 4월에는 멜로니 총리가 6월 13~15일 이탈리아 풀리아에서 열린 G7 회의에 교황이 참석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대개 교황의 일정은 교황청이 발표하는데, 이 경우 교황이 이탈리아 정부가 발표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또 같은 달 교황청 신앙교리부가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다룬 선언 「무한한 존엄」을 발표했는데, 대부분의 이탈리아 언론은 대리모에 대한 교황청의 비판에 집중했다. 대리모 반대는 멜로니 총리의 주요 정책 기조로, 언론은 ‘베르골료가 멜로니에게 표를 던지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이 소식을 다뤘다.

멜로니 총리는 교황과 사진을 찍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고, 교황도 기꺼이 응하고 있다. 교황과 멜로니 총리는 지난 5월 26일 제1차 세계 어린이의 날 미사에서도 만났다.

물론 이러한 예들이 교황이 무조건 멜로니 총리를 옹호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교황이 총리 직선제에 관한 추피 추기경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하지만, 교황청 전문가들은 간접적이고 미묘하긴 하지만 이번 설전이 추피 추기경과 프란치스코 교황 사이의 간극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작은 간극이 큰 틈으로 벌어지는 것을 봐 왔다. 이번 일로 다음 콘클라베에서 추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속이라는 인식이 바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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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