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단 한 일요일도 빠짐없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전 과정을 마친 예비 신자로서, 성유로 도유될 것이다. 내가 선택한 ‘발레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동안 한 번은 성부의, 한 번은 성자의, 한 번은 성령의 이름으로 성수가 머리 위에 세 차례 부어질 것이다. 당시 이교도였던 발레리안은 성녀 체칠리아와 결혼하며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체칠리아는 나의 아내 세례명이다.
아내는 무신론자인 나와 혼인한 후 60년이 넘는 동안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대모를 배반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껴왔는데, 대모는 아내에게 결코 신앙을 포기하지 말라며 만약 아내가 신앙을 포기한다면 그녀, 즉 그 대모가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 슬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아내에게 성당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심지어 나는 아내가 결혼 전에 가톨릭신자였는지도 몰랐다. 마침내 아내가 다시 신앙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도 아내를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심적으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관에 부딪혀 있다. 내가 온순한 양처럼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고집불통 염소처럼 호전적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이런 상태의 모순 속에서 내가 프랑스 어느 수도원 입구 돌 위에 새겨진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그 다음엔”이라는 문구가 나를 갈림길에 이르게 한다. 허무주의적 선회냐, 아니면 영적 향상이냐. 이 양면성의 철학적 질문에 신을 믿는 자의 대답으로서 “내 탓이오”를 실천할 것을 다짐한다. 결국 나는 아내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아,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어떻게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하느님을 공경하는 일에 형평을 이룰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자기 전과 아침에 눈을 뜨면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고 있다. 부모님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분들이다. 어떻게 새로운 존재가 부모 자식 관계와 같아질 수 있을까?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끼 속에서 나는 고향을 오고 가는 길에 한 신부님의 유튜브를 보며 다소 위안을 찾았다. 그 신부님은 감히 경건하고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영역을 넘나드는 흥미롭게 용감한 사람이다. 아내는 그의 방송 프로그램 팬이었다. 처음에는 나는 이 신부님이 이단자이거나 그런 것과 비슷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를 따라 그 신부님이 주례하시는 미사에 참례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는 부모님과 하느님이 공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나는 성당에 갈 때, 부모님에게 나를 따라오시라고 제언한다. “어머니 아버지, 저희 부부와 함께 성당에 가시지 않겠어요?”
날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아내에게 하느님 품 안으로 다시 돌아온 것에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가운데, 나는 하수영이 부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좀 더 자주 부를까 한다. 아내는 노래 가사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가사가 보내는 메시지가 변화무쌍했던 60년의 결혼 생활과 거의 병치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남편인 내가 부를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노래는 부부 생활에 있어 행복, 인정, 애정, 동정심, 사려 깊음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여기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소개한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시린 손끝에 뜨거운 정성 고이접어 다져온 이 행복
여민 옷깃에 스미는 바람 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미운 투정 고운 투정 말없이 웃어넘기고
거울처럼 마주보며 살아온 꿈같은 세월
가는 세월에 고운 얼굴은 잔주름이 하나 둘 늘어도
내가 아니면 누가 살피랴 나 하나만 믿어온 당신을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김행정(발레리안)
vividcecil@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