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본당, 첫 보좌 신부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평소와 같이 주일 저녁 미사 봉헌이 끝나갈 무렵,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영성체 전, 감실의 성체를 모셔 오려고 열쇠를 돌리는데, 아무리 해도 감실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새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 감실이었는데, 날씨 탓으로 변형된 원목 때문에 자물쇠가 고장이 나버린 것입니다. 돌리고 돌려도 돌아가지 않는 열쇠 때문에 저만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시간은 눈치 없이 흐르고, 덩달아 제 등줄기에서도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고민하던 찰나, 새로 축성된 성체가 담긴 성합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마치 이순신 장군님이 된 것처럼 속으로 외쳤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한 개의 성합이 남아있사옵니다.’ 그리고 비장하게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 어떻게든 성체를 쪼개고 쪼개서 나누어 드려야겠다.’ 제의방에서 가지고 나온 두 개의 빈 성합에 곧장 성체를 나눠 담고 수녀님들께 상황을 설명해드린 후에야 그렇게 뒤늦은 분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반대편에 계신 원장 수녀님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성체를 나누어드리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문제가 해결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기에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사 후 수녀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신 눈물의 이유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려고 이렇게 가루가 되도록 쪼개지시는데, 어떻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신부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와 비슷한 경험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광화문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미사에 참례했을 때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참석하신 까닭에 성체가 모자랐던 것입니다. 성체를 모두 나누어 드린지라 방법이 없겠구나 싶던 그때, 앞에 계신 신부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제대 위에는 아직 성혈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곳에 있던 모든 신자분은 성혈을 조금씩 모실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들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잊지 못할 두 번의 ‘성체의 기적’ 체험입니다. 이 소중한 기억들이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에 담긴 예수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헤아려볼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로 모여든 모든 사람들을 절대로 굶기지 않으십니다. 당신 몸을 쪼개고 쪼개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나누어 먹이십니다. 기적은 빵과 물고기가 불어난 시점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 마음으로부터 이미 시작된 것 아닐까요?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 매일 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을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요.
글 _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