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오수연 작가

최용택
입력일 2024-11-17 수정일 2024-11-25 발행일 2024-12-01 제 3419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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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기도에 도움되는 작품 만들고자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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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별이신 성모>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

어릴 적부터 늘 그림을 그렸어요. 피아노를 치기도 했는데, 그냥 그림이 좋았어요. 어머니께서 여러 성지에 다니셨는데, 저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종이나 땅에 그림을 그렸던 게 기억나요. 중학교에 들어가니 미술반이 있어서 거기에 들어갔어요. 한번은 조각 수업을 했는데, 사람 얼굴을 만드는 시간이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눈을 표현할 때 그냥 평면으로 동그랗게 그렸어요. 그런데 저는 눈을 입체감 있게 동그랗게 파놓았죠. 그걸 보신 선생님께서 저보고 ‘너는 조소과 가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다른 아이들이 눈을 평면으로 표현하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주님께서 제게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탈렌트를 주신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 조각을 하게 됐어요. 정대식(마티아) 작가님이 아버지의 오랜 친구셨어요. 정 작가님이 홍대 출신이라 저보고 ‘너는 그냥 홍대 가라’고 하셔서 홍익대 조소과에 들어갔어요. 당시 미대가 몇 군데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인사동 갤러리를 많이 돌아다녔어요.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어떤 성향인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많이 보았어요. 아마 작품을 보는 눈도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인 것 같아요. 그림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신나게 그림의 의미를 설명하곤 했죠.

성미술 작가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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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양원성당 십자고상

대학 졸업 후 미래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집안 형편상 유학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혼자서 방에 콕 처박혀서 밤새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어요. 밤새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고 작업을 하다가 새벽에 잠에 드는 그런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성모상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어요. 전 누가 부탁을 하면 그냥 들어주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의 부탁에 성모상을 만들었어요.

그날 여느 때처럼 촛불을 켜놓고 성모상과 제 자화상을 만들고는 깜빡 잠이 들었었어요. 잠결에 누군가 제 머리를 강하게 치는 느낌이 들어 일어나니, 제 방 한가운데에 불기둥이 있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처 끄지 않은 촛불 때문에 방에 불이 난 거였어요. 전 원래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일어나지 못하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깰 수 있었어요. 부랴부랴 욕실에 가니 우연찮게 욕조에 물이 받아져 있었고 그 물로 불을 껐어요.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죠. 불을 끄고 천천히 보니 신기하게도 성모상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한데, 제 자화상을 까맣게 그을려 있었어요. 전 그날 일은 주님께서 수호천사를 보내 저를 살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원교구 광주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때였어요. 아는 신부님이 가톨릭미술가회가 있다고 들어오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작가들이 왜 성물을 만들어야 하지 하면서 이해하지 못했어요. 성물은 그냥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도하는 도구잖아. 그냥 사면 되지. 왜 작가가 필요해?’라고요. 그만큼 성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가 당시 수원교구 분당야탑동본당 주임이던 최재용(바르톨로메오) 신부님께서 성당 리모델링을 하면서 저에게 작품을 의뢰하셨어요. 성수대와 한지 유리화였어요. 대학 시절 한지공예 전통기법 중 하나인 ‘꽃일’ 기법을 배웠어요. 한지 위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고, 그 부분을 잘라내 걸어놓는 꽃일 기법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전해요. 성당 계단 창과 교리실, 휴게실 창에 설치된 작품들에는 다양한 성모상을 한국적인 모습으로 표현했어요. 최 신부님은 아무 경험이 젊은 작가였던 제게 큰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도 인사를 드리면 ‘항상 정진하세요’라는 표현으로 응원을 해 주세요.

야탑동성당에서 작업한 게 2005년 즈음이었는데, 이후로는 1년에 한 군데 정도씩은 작업을 했어요. 십자가의 길 14처와 십자고상 등을 꾸준하게 만들어 봉헌했어요. 십자고상을 만들 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사실 십자가의 길은 처음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잘 몰랐어요. 최종태(요셉) 선생님께서 관련 자료를 구해주셔서 그걸 보고 연구하고, 명동대성당이나 다른 성당에 가서 작품들을 많이 보고 묵상하며 만들었어요. 신자들이 보고 기도하는데 방해만 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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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언제나 최선 다하는 성미술 작가 되고파

2014년 세월호 참사 일어나고 아버지께서 그해 가을에 돌아가셨어요. 제 작업실이 안산에 있는데요, 제 작업실 앞으로 등교하던 아이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중간에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표현한 작품들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작업을 놓게 되더라고요. 또 어머니께서 중간에 돌아가시고 그렇게 혼자가 됐어요. 2014년 이후로 한 7년 동안은 성미술 작업을 못했어요.

그러다가 2021년 서울대교구 양원성당에 십자고상과 십자가의 길을 봉헌했어요. 여기 십자가의 길에는 제 부모님이 투영돼 있어요.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예수님을 잃은 성모님의 마음으로 투영한 거죠.

양원성당 이후로 작업을 쉬고 있어요. 뒤늦게 짝을 만나 결혼도 했고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누군가 부탁하면 언제나 ‘네’라고 답을 해요. 곧 제 작업을 다시 시작할 거예요. 언제나 기도하는데 도움이 되는 성미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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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백치 하와>, <성 프란치스코>, <Pi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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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연(세레나) 작가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5년 평화화랑 개인전 등 3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대교구 양원성당 십자고상과 십자가의 길, 묵동성당 십자가의 길을 포함해 다수의 본당에 성미술 작품을 봉헌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