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기도에 도움되는 작품 만들고자 노력”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
어릴 적부터 늘 그림을 그렸어요. 피아노를 치기도 했는데, 그냥 그림이 좋았어요. 어머니께서 여러 성지에 다니셨는데, 저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종이나 땅에 그림을 그렸던 게 기억나요. 중학교에 들어가니 미술반이 있어서 거기에 들어갔어요. 한번은 조각 수업을 했는데, 사람 얼굴을 만드는 시간이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눈을 표현할 때 그냥 평면으로 동그랗게 그렸어요. 그런데 저는 눈을 입체감 있게 동그랗게 파놓았죠. 그걸 보신 선생님께서 저보고 ‘너는 조소과 가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다른 아이들이 눈을 평면으로 표현하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주님께서 제게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탈렌트를 주신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 조각을 하게 됐어요. 정대식(마티아) 작가님이 아버지의 오랜 친구셨어요. 정 작가님이 홍대 출신이라 저보고 ‘너는 그냥 홍대 가라’고 하셔서 홍익대 조소과에 들어갔어요. 당시 미대가 몇 군데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인사동 갤러리를 많이 돌아다녔어요.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어떤 성향인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많이 보았어요. 아마 작품을 보는 눈도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인 것 같아요. 그림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신나게 그림의 의미를 설명하곤 했죠.
성미술 작가의 길로
대학 졸업 후 미래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집안 형편상 유학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혼자서 방에 콕 처박혀서 밤새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어요. 밤새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고 작업을 하다가 새벽에 잠에 드는 그런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성모상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어요. 전 누가 부탁을 하면 그냥 들어주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의 부탁에 성모상을 만들었어요.
그날 여느 때처럼 촛불을 켜놓고 성모상과 제 자화상을 만들고는 깜빡 잠이 들었었어요. 잠결에 누군가 제 머리를 강하게 치는 느낌이 들어 일어나니, 제 방 한가운데에 불기둥이 있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처 끄지 않은 촛불 때문에 방에 불이 난 거였어요. 전 원래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일어나지 못하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깰 수 있었어요. 부랴부랴 욕실에 가니 우연찮게 욕조에 물이 받아져 있었고 그 물로 불을 껐어요.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죠. 불을 끄고 천천히 보니 신기하게도 성모상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한데, 제 자화상을 까맣게 그을려 있었어요. 전 그날 일은 주님께서 수호천사를 보내 저를 살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원교구 광주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때였어요. 아는 신부님이 가톨릭미술가회가 있다고 들어오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작가들이 왜 성물을 만들어야 하지 하면서 이해하지 못했어요. 성물은 그냥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도하는 도구잖아. 그냥 사면 되지. 왜 작가가 필요해?’라고요. 그만큼 성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가 당시 수원교구 분당야탑동본당 주임이던 최재용(바르톨로메오) 신부님께서 성당 리모델링을 하면서 저에게 작품을 의뢰하셨어요. 성수대와 한지 유리화였어요. 대학 시절 한지공예 전통기법 중 하나인 ‘꽃일’ 기법을 배웠어요. 한지 위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고, 그 부분을 잘라내 걸어놓는 꽃일 기법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전해요. 성당 계단 창과 교리실, 휴게실 창에 설치된 작품들에는 다양한 성모상을 한국적인 모습으로 표현했어요. 최 신부님은 아무 경험이 젊은 작가였던 제게 큰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도 인사를 드리면 ‘항상 정진하세요’라는 표현으로 응원을 해 주세요.
야탑동성당에서 작업한 게 2005년 즈음이었는데, 이후로는 1년에 한 군데 정도씩은 작업을 했어요. 십자가의 길 14처와 십자고상 등을 꾸준하게 만들어 봉헌했어요. 십자고상을 만들 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사실 십자가의 길은 처음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잘 몰랐어요. 최종태(요셉) 선생님께서 관련 자료를 구해주셔서 그걸 보고 연구하고, 명동대성당이나 다른 성당에 가서 작품들을 많이 보고 묵상하며 만들었어요. 신자들이 보고 기도하는데 방해만 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언제나 최선 다하는 성미술 작가 되고파
2014년 세월호 참사 일어나고 아버지께서 그해 가을에 돌아가셨어요. 제 작업실이 안산에 있는데요, 제 작업실 앞으로 등교하던 아이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중간에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표현한 작품들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작업을 놓게 되더라고요. 또 어머니께서 중간에 돌아가시고 그렇게 혼자가 됐어요. 2014년 이후로 한 7년 동안은 성미술 작업을 못했어요.
그러다가 2021년 서울대교구 양원성당에 십자고상과 십자가의 길을 봉헌했어요. 여기 십자가의 길에는 제 부모님이 투영돼 있어요.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예수님을 잃은 성모님의 마음으로 투영한 거죠.
양원성당 이후로 작업을 쉬고 있어요. 뒤늦게 짝을 만나 결혼도 했고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누군가 부탁하면 언제나 ‘네’라고 답을 해요. 곧 제 작업을 다시 시작할 거예요. 언제나 기도하는데 도움이 되는 성미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요.
◆오수연(세레나) 작가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5년 평화화랑 개인전 등 3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대교구 양원성당 십자고상과 십자가의 길, 묵동성당 십자가의 길을 포함해 다수의 본당에 성미술 작품을 봉헌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