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프란치스코 교황과 파티마

최용택
입력일 2024-11-21 수정일 2024-12-03 발행일 2024-12-01 제 341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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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2023년 8월 5일 포르투갈 파티마 성지에서 묵주 기도를 하고 있다. CNS

100여 년 전엔 1917년 5월,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 근처에서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일어났다. 루치아와 하신타, 프란치스코라는 세 명의 어린 목동이 가족들의 양떼를 돌보고 있던 중에,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했다. 성모님은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고, 메시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고를 주었다.

“태양보다 더 밝은 여인”으로 묘사된 성모님의 발현은 당시 유럽을 뒤흔든 두 개의 대규모 재앙에 비하면 작은 부수적인 사건에 불과했다. 첫째는 당시 4년에 접어들어 엄청난 학살과 파괴가 진행됐던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러시아에서 발생해 수십 년 동안 세상을 변화시켰던 볼셰비키 혁명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적·생태적 혼란에 익숙한 인물이다. 교황은 난민을 환영하는 태도와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로 여러 곳에서 맹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교황은 우리가 현재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 제1차 세계대전과 비슷한 위기에 빠져 있음을 알고 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발현은 가톨릭교회의 유산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적 계시’인 발현이 교회 전체를 위한 것일까? 교황청은 발현에 관해 항상 신중하게 대응하며 사건의 진위를 확정하는 데 가능한 오랜 시간을 들인다.

하지만 일반 신자들의 신심은 그렇게 조심스럽지 않다. 파티마를 비롯해 루르드, 과달루페, 벨란카니, 아파라시다 등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명한 발현은 신자들의 깊은 신심 덕분에 인정됐다. 대중의 신심은 열정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성모님의 기적같은 ‘존재’남에 집중돼 있다. 일반 신자들에게 이것은 마음의 문제다.

언제나 그렇듯, 파티마 성모의 발현은 아이들에게 전해진 메시지와 함께 다가온다. 파티마 성모님은 아이들에게 “많이 기도하고 특히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라”면서 “많은 영혼이 지옥에서 사라지는데 아무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희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전한 성모님의 메시지는 ‘세 가지 비밀’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비밀은 아이들이 1917년 7월 13일에 본 지옥에 관한 환상이었다. 두 번째 비밀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신심으로 영혼을 구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세 번째 비밀은 루치아가 적어 봉인하고 ‘성모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에’ 1960년에야 열어야 한다고 했는데, 세 가지 비밀 중 가장 복잡한 내용이었다. 1983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대한 암살 시도가 이 비밀의 해석으로 여겨졌다. 교황청은 이 세 번째 비밀을 2000년 6월 26일 공개했다.

파티마 성모에 대한 신심은 가톨릭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파티마 성모는 묵주 기도 신심을 증대시켰다. 일반 신자들에게 ‘보속의 고통’의 개념을 강조했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전례개혁이 이뤄지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신자들은 매일 미사 후 ‘러시아의 회개를 위해’ 성모송 세 번을 바쳤다.

하지만 더 큰 맥락에서, 성모의 발현은 대부분이 왜 남성이 아닌 여성과 어린이에게 나타났는지에 대해 질문해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한 이유는 오랫동안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존재’였으며 독신 남성에 의해 전적으로 행사돼 온 가톨릭교회의 권력과 영향력 때문이었다.

비록 여성들이 교회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지만, 이들의 역할은 전적으로 남성들이 지시하는 것에 종속하는 일이었다. 여성의 역할은 겸손하고 순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남성들, 특히 성직자들은 여성들과 권력을 쉽게 나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순종이 유일한 길이었을 때, 발현을 목격한 이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비록 성직자들 앞에서 낮은 위치에 있을지라도 그것이 항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모의 발현은 루치아와 하신타, 프란치스코뿐만 아니라 베르나데트 후안 디에고 벨란카니의 목동 등 낮은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놀라운 징표와 기적은 교회의 아웃사이더에게 주어졌다.

1세기가 지난 지금, 가톨릭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무엇일까? 신학적인 선언이나 교황의 교령도, 소련의 붕괴가 아니라 성모님께서 평범한 여성과 아이들에게 나타난 발현이다. 그리고 이 발현에는 육체적·영적 치유로 가득한 ‘징표와 기적’이 동반한다.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끊임없이 기도하세요. 세상의 잘못된 일을 위해 희생하세요. 이러한 비밀에 집착하지 말고, 항상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놀라움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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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미론 페레이라 신부(예수회)
예수회 사제로 평생을 기자 양성 등 언론활동에 힘써 왔다. 인도 하비에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라 크루아(La Croix)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