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일을 해 돈을 버는 것과 글을 쓰는 것 두 가지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돈을 버는 것’이라고 대답할 거다. 먹고 사는 일이 내겐 그만큼 중요하다. 나이 쉰이 넘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젠 아이들이 다 커서 예전처럼 악착을 떨고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이 돈이 되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워낙 책이 안 팔리는 시대라 거기에 기대 살 수는 없다. 가끔 원고청탁이 들어오긴 하지만 원고료가 언제 지급되는지 물어보지 못한 채 글을 써 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서상 돈 얘기를 꺼내는 건 왠지 속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서울 봉천동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다 봉천동 산꼭대기에 있는 빌라를 월세로 얻었다. 아토피가 있는 큰아들 때문에 반지하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남편 월급의 반이 월세로 들어가다 보니 늘 돈이 모자라 허덕였다.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의 월급 말고는 따로 돈이 들어올 데가 없었다. 하지만 가끔, 가뭄에 단비 같은 돈이 생겼다. 그게 바로 남편의 ‘강연비’였다. 지방에 가서 강연을 하면 교통비까지 해서 20만 원. 서울에서 하면 10만 원 남짓. 그 돈이 들어오면, 우리 가족은 돼지갈비도 사 먹고 애들 데리고 바람도 쐬러 갈 수 있어 그게 참 좋았다.
통장에 돈이 똑 떨어졌던 어느 날, 남편에게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서울 변두리에 있는 어느 성당에서였는데 보통 성당에서 강연을 하면 주임 신부님이 알아서 강연료를 챙겨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쩔 땐 강사비를 못 받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어쨌거나 그날 아침, 애들도 나도 신이 나 남편을 따라나섰다.
“아빠 일 끝나면 우리 맛있는 꼬기 먹자~~.”
미사가 끝날 때까지 성당 마당에서 아이들과 기다리고 있는데 강연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남편의 표정이 왠지 어두워 보였다.
“강사비는 받았어?”
“별말이 없네. 좀 기다려 보자.”
“뭐야, 그런 게 어딨어?”
성당 마당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는데 주임 신부로 보이는 분이 느릿느릿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애들 머리를 한 번씩 쓱쓱 쓰다듬어 주더니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했다. 저 말은 강연비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주말에 사람을 불러내 일을 시켰으면 당연히 줘야 할 돈이었다. 우리는 약속이 있어 그냥 가보겠다 말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을 나왔다. 그날, 아이들에게 돼지갈비를 사주지 못해 얼마나 미안하고 초라한 기분이었는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일을 하면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지만 혼자 속앓이를 하면서도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곱창집에서 일을 할 때, 외국인 노동자들이 몇 달째 월급을 못 받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는 모습도 보았다. 가끔 TV 프로에서 우스꽝스럽게 써먹는, “우리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이 실상은 참 가슴 아픈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런 말을 서슴없이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원고료는 언제 입금되나요?’ ‘그 일을 하게 되면 얼마를 줍니까?’
그건 돈에 대한 것이기 이전에 부당함을 거부하겠다는 의지이다. 봉사나 재능기부 같은 일도 스스로 원하고 합의 된 이후에 하는 것이 맞다. 일을 시키는 상대가 그걸 판단하고 정해서는 안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은 종교만큼이나 성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글 _ 김양미 비비안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