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세우자! 대건!”
‘크게 세우자’는 모교 인천대건고등학교 동문들이 장난삼아 신나게 외치는 구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는 설레는 마음은 입학하던 날부터 시작됐다. ‘그래도 고등학교니까 더 멋있겠지?’ 입학하던 날, 내 눈에 들어온 대건고등학교는 며칠 전 졸업한 선인중학교보다 멋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1998년 연수구 동춘동으로 이사한 모교는 당연히 시설도 좋고 근사하다.) 실망한 기색이 만연한 내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있었다. 페인트가 다 벗겨지고 녹이 슬어버린 학교 교문 옆에 학교와는 자태가 전혀 다른 웅장한 건축물이 있었던 것이다.
화수동성당이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아하, 역시 천주교 학교라서 성당이 큰집, 학교가 작은 집인가?’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생활 내내 일주일에 한 번씩 그 큰집에 꼭 가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황금 같은 일요일엔 안 가도 됐다. 정확한 요일은 기억이 흐려졌지만, 주중에 한 번씩 미사를 드리러 갔다. 그렇게 나는 가톨릭교회를 만났다.
어린 시절에는 성탄절에 빵도 먹고 사탕도 먹고 친구들 만나러 가는 재미로 교회를 다녔지만 1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는 반강제(?)로 성당에 가야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녀님이 가르치시는 교리 시간도 있었다. 신기했다. 언제나 신비하고 차분한 모습의 동네 근처 수녀원 수녀님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하느님 얘기, 예수님 얘기, 성모 마리아님 얘기를 하면서 졸고 있는 우리에게 호통치시는 수녀 선생님은 훈육 선생님 다음으로 무서웠다. 더 신기한 것은 교리 시간이 한 주 두 주 지나면서 몇몇 친구들이 세례를 받기 시작했다. 확실히 세례를 받은 친구들은 혼날 일이 없었다. 나도 그즈음에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세례를 받은 성당은 학교가 있는 화수동성당도 아니고 집 근처 성당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우리 동네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그것도 두 번씩 갈아타고 가야 하는 만수3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예쁜 여학생들이 많다고 나를 꼬드긴, 아니 선교한 친구들이 다니는 성당이었다. 그 성당에서 토요일마다 또 교리 공부를 했다. 주중엔 학교에서 주일엔 다른 동네 성당에서. 이 얼마나 열정적인 예비신자인가? 친구들의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했다. ‘얘가 여기서 여자 친구를 찾는 거 아니냐?’, ‘설마, 쟤가 신부님이 되려고 하는 건 아니지?’ 등등.
모든 추측은 다 빗나갔다.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자라나는 흑심은 다른 데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응원단장을 했던 끼를 마음 놓고 발휘할 수 있는 시간, 바로 교리 시간이 끝나고 이어지는 오락 시간이었다. 나에게 교리 시간은 단순한 요식 행위였고 오락 시간은 정말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었다.
교리 공부 시간 학생들의 출석률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나의 능력인가? 본당 신부님의 은혜인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
매주 성당에 가는 나는 걱정도 없고 매일 신나는 10대였다. 남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 나의 신앙이 돼버렸다. 그렇게 내 꿈을 키워 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의 10대는 점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찬미 예수님!
글 _ 장용 스테파노(방송인·한국가위바위보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