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산타 마리아 프레소 산 사티로 성당

이형준
입력일 2025-05-14 09:22:14 수정일 2025-05-14 09:22:14 발행일 2025-05-18 제 3442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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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근법 활용한 착시 효과로 르네상스 건축물의 3차원 공간 완성
밀라노 시기 브라만테의 대표 작품…제단 중앙집중형 공간으로 구성

브루넬레스키가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을 설계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공간의 통일성입니다. 그는 산 로렌초 성당과 산토 스피리토 성당의 건축을 통해서 선형 평면보다는 중앙집중형 평면에서 공간의 통일성이 더욱 잘 구현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알베르티는 브루넬레스키의 중앙집중형 공간 설계를 계승하였고,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연 브라만테는 중앙집중형의 공간 구성을 르네상스 건축의 기본 방향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중앙집중형 평면에 기하학적 구성과 깊은 공간감을 더하여 르네상스 건축물의 3차원 공간을 완성하였습니다. 또한 원형과 돔 등의 요소로 천상의 이미지를 표현함으로써 성당 건축에 그리스도교적 고전주의를 적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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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프레소 산 사티로 성당 네이브에서 바라본 위조 앱스(성가대석). 제단 뒤에 실제로 앱스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브라만테가 그려 넣은 그림으로, 그가 화가 시절 건물화를 자주 그렸던 실력이 드러난다. 출처 위키미디어

브라만테가 밀라노에 머물렀던 시기(1480~1499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첫 번째 성당은 ‘산타 마리아 프레소 산 사티로 성당’(Chiesa di Santa Maria presso San Satiro)입니다. 이곳에 성 사티로(Satyrus, 334~377년)에게 봉헌된 성당이 세워진 역사는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 사티로는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형으로, 동생이 밀라노의 주교로 선출되자 공직을 버리고 밀라노 교구의 세속 관련 행정 업무를 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가 난파하여 죽을 뻔하다가 살아나게 되었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사티로는 세례를 받고 교회 일에 더욱 성실히 임하였습니다. 

그 후 불과 마흔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동생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추모 기도와 함께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500년이 지난 872년에 밀라노의 주교는 밀라노의 베네딕토 수도원 안에 작은 성당을 지어 성 사티로와 성 암브로시오, 성 실베스테르에게 봉헌하였습니다. 산타 마리아 프레소 산 사티로 성당은 그로부터 600년 후에 그 성당 자리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새로 세워진 성당입니다.

브라만테는 성당의 평면을 네이브의 선형 공간과 제단의 중앙집중형 공간으로 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네이브월의 기둥 간격에 비해서 네이브의 폭을 넓게 하여 네이브 전체 길이가 짧게 느껴지도록 하였는데, 이는 네이브의 선형성을 약화시키는 브루넬레스키의 방식에서 온 것입니다. 또한 알베르티의 영향으로 네이브월의 기둥을 사각기둥과 가는 벽기둥의 교차 리듬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성으로 평면은 전체적으로 라틴 크로스와 그릭 크로스의 중간 형태로 보이는데, 크로싱에 돔을 얹어 중앙집중성을 강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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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프레소 산 사티로 성당은 크로싱에 돔을 얹어 중앙집중성을 강조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하지만 평면도에서 중앙 제단의 뒤편을 보면 보통 앱스(성가대석)가 있어야 할 공간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앙집중형 평면에서 앱스 없이 트란셉트 양쪽과 네이브 쪽의 세 개만 있는 형태입니다. 트란셉트 역시 앱스 방향에 경당들이 없어서 마치 성당의 앱스 부분이 잘려나간 것 같이 보입니다. 이것은 성당 뒤편의 길로 인해 부지가 좁아서 생긴 현상인데, 브라만테는 성당의 내부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 제단 뒤편에도 부지가 있는 것으로 가정하여 성당을 설계하였습니다. 그리고 뒷길로 인해 만들지 못한 제단 뒤편의 앱스 부분을 실제로 있는 것처럼 투시도로 처리한 것입니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마사초가 그린 유명한 삼위일체 성화가 있습니다. 브루넬레스키가 창안한 소실점이 있는 원근법을 적용하였는데 그림 속 건물이 마치 벽의 뒤편을 뚫고 나간 것처럼 보입니다. 브라만테는 초기 르네상스의 이 화법을 이용하여 제단 뒷면 벽에 세 개의 베이로 되어 있는 앱스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가 화가 시절에 건물화를 자주 그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입니다. 이로써 존재하지 않는 제단 뒤편의 앱스 부분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눈앞에 펼쳐집니다.

중앙집중형 공간에 이어서 브라만테의 작품에 나타난 두 번째 요소는 고대 로마의 고전주의입니다. 그러나 이 성당에 나타난 고전주의적 요소는 다른 양식들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볼트와 아치는 중세 건축의 형태를 띠고 기둥의 구조 체계는 독립 기둥과 벽기둥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중세의 건축 양식에 나타난 프로토-르네상스와 고대 로마 고전주의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 해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외부에 설치된 사각 벽기둥은 로마 고전주의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브라만테의 중앙집중형 공간이 돋보이는 또 하나의 성당은 파비아 대성당(Duomo di Pavia)입니다. 이 성당의 설계가 브라만테에게 맡겨진 것은 아니지만, 크리스토포로 로키와 조반니 안토니오 아마데오가 공사를 맡았을 때부터 브라만테는 설계 및 공사에 대한 논쟁을 중재하고 자문하였기에, 기본 설계 과정부터 브라만테의 의도가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파비아 대성당은 아르놀포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과 브루넬레스키의 산토 스피리토 성당의 평면과 매우 유사하고,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과 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모습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당의 평면은 전체적으로 보면 라틴 크로스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3랑식 네이브에서 아일과 아일 뒤편의 경당은 네이브의 선형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그릭 크로스의 중앙집중형 공간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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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프레소 산 사티로 성당 파사드. 출처 위키미디어

또한 두꺼운 벽기둥이 받치고 있는 크로싱의 팔각형 돔과 크로싱을 중심으로 방사형을 이루는 트란셉트와 아일, 앱스 역시 중앙집중성을 배가시킵니다. 브라만테는 파비아 대성당 공사 때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도면을 처음 봤다고 전해지는데, 이때 받은 영감이 훗날 로마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할 때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브라만테는 르네상스 건축의 초기 단계가 완성되고 성숙의 과정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활동한 건축가입니다. 따라서 그의 건축은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는 방향보다는 새롭게 등장한 양식의 장점을 살리고 문제점은 해결하면서 르네상스 건축을 전성기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가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에게서 새로운 양식을 배우고, 나아가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연구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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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