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겉도는 생명윤리 무엇이 문제인가? (1)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4-04-11 수정일 2004-04-11 발행일 2004-04-11 제 239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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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 교회 윤리적 가르침 외면
신앙과 생활 심각한 괴리보여
일반인과 다름없는 윤리의식
사진말 -
최근 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가 발표한 「생명과 가정에 관한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들의 생명과 가정에 대한 의식과 실천이 일반인들과 거의 다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바대로 가톨릭 신자들 조차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에 대해 충실하지 못한 것은 그야말로 심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신앙과 생활의 철저한 괴리가 나타나는 실태와 원인을 검토하고, 과연 그에 대한 사목적 대안은 없는지 3회에 걸쳐 알아본다.

『인공피임을 교회에서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지키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윤리적 지침 가운데 하나가 인공피임에 대한 금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신자들 중에서 35.8%만이 인공피임에 대해 반대했고, 나머지는 인공피임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교회 윤리지침 시대 착오(?)

가톨릭교회는 콘돔, 페미돔, 루프 등 피임 기구와 경구용 피임약을 사용하는 인공피임에 대해서 윤리적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신자들은 부부 생활에 있어서 인공피임이 반생명적인 행위라는 의식을 별로 하지 않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공피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일회적인 피임 뿐만 아니라 정관수술 등 이른바 불임수술을 하고 있는 비율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44.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교회가 권장하는 자연출산 조절법을 사용하는 비율은 불과 14.6% 뿐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낙태에 대한 인식이다.

올해 결혼한지 만 8년이 된 한 여성 신자는 최근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이미 아이가 셋이 있었고, 치솟는 교육비 부담에, 맞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더 낳기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성당에서야 아이를 지우면 안된다고 가르치지만, 현실적으로 무한정 아이를 낳을 수는 없잖아요. 물론 좋은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 여성은 이미 한 차례 낙태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물론 다소간의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라고 생각하면서 다음부터는 피임에 좀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낙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더 적극적으로 피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조사에 따르면 신자들 중에서도 부분적으로라도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87.6%로 압도적이었고 그 이유로는 개인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60.7%로 절반을 넘었다. 또 실제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이 34.2%에 달했고 3번 이상 낙태를 한 여성이 11.6%로 나타났다.

낙태 피하기 위해 피임(?)

불임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선호되는 시험관 아기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즉 시험관 아기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절반 정도인 51.6%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임 문제가 있을 때 대부분이 입양보다는 시험관 아기를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통계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1999년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거의 유사한 결과가 나와 있다. 이에 따르면 40%가 낙태 경험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고, 50.5%가 교회가 금지하는 인공 피임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자연출산조절법은 10% 조금 넘는 신자가 사용하고 있었다.

겉도는 생명윤리 부분 대책으로 해결 어려워

이처럼 교회의 생명윤리 가르침이 겉도는 것에 대해서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지만, 사실 인간 생명을 존중해야 하고, 그러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너무 멀리 간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몇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해결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악화됐다고 할 수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