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라 하면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일컫는다. 또 “자기 처지나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이나 기풍”을 일러 말하기도 한다.
줏대 있는 사람은 주관이 뚜렷하고 어떤 유혹이나 이설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남성이나 여성이나 어른스러움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줏대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자기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서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을 지칭하며, 이런 사람은 결코 성숙한 사람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없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이 ‘줏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심사숙고해봐야 할 듯하다. 대개 한 나라의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은 국민 모두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의 중대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가장 깊이 숙고해야 할 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판에서 과연 이들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을 때, 도대체 뭘 살펴봐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는 비극적 상황이다.
이들의 신념은 오직 권력 장악이고, 그 동기도 권력 장악이다. 주요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문제들에 대한 이들의 입장을 결정짓는 잣대와 기준도 오로지 권력 장악이다. 권력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맹목적이며 이기적인 욕망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일관성이 있기는 하다.
선거의 결과를 종종 좌우하던 부동층의 향배는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변수인 듯하다. 선거 날짜에 가까이 갈수록 부동층의 비율은 축소되는 것이 상례인데, 이번 대선에서는 오히려 갈수록 부동층이 느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어느 신문의 기사처럼 ‘네거티브 한 방’으로 판세가 좌우될 조짐이다. 정책이 상실된 선거에서, 결정적인 오점은 치명타가 된다. 결국, 우리 선거는 국가와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누가누가 큰 죄가 없느냐 하는 참으로 우스운 꼴을 보여주고 있다.
유권자의 입장에서도 줏대는 요구된다. 과거처럼 지역색이나 이념 논쟁은 큰 변수가 되지 않고 있다. 산만하기 그지없는 후보자들의 난립에 유권자들은 그저 혼란스럽다. 맘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얼마 전 미국 주교회의는 정기총회를 마치면서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 가톨릭 신자들이 어떤 자세로 정치인들을 판단해야 하는지를 담은 문건을 발표했다. 그 기준은 ‘양심’이었다. 양심은 죄를 지으면 가책을 느끼는 소극적인 마음이 아니다. 양심은 말 그대로 좋은 마음이고 훌륭한 마음이며, 이는 선하고 좋은 것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공동선을 건설하려고 하는 능동적인 자세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신념과 확신, 더욱이 신앙인인 우리,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진리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선택해야 할 소명을 받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은 곧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건전한 시민의식과 그에 바탕을 둔 참여적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냉소하고 외면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참여하고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완수해야 한다.
박영호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