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구유, 그 유래를 아십니까?

입력일 1998-12-20 수정일 1998-12-20 발행일 1998-12-20 제 213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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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년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가 교회 동굴앞에 처음으로 말구유 만들어 공개하면서 유래
사적인 성탄구유 공경 이미 베들레헴에서 시작
트리와 함께 성탄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구유. 그리스도가 탄생한 장소인 구유는 원래 아주 보잘것 없는 말구유이지만 서양 각 교회에서는 그 뜻을 기념하기 위해 각 나라의 전통과 풍습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구유를 제작해오고 있다. 본당 혹은 지역마다 특색있는 구유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탄시기가 되면 구유순방을 하는 신자들도 매우 많다.

현재 로마의 성모대성당 경우 예수가 탄생한 구유가 모셔져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출생한 테오도로 1세(Theodorus 1 642-649) 교황이 모셔온 것이다.

성당이나 가정에 말구유를 만드는 풍속은 아씨시의 성프란치스꼬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프란치스꼬는 1223년 이탈리아 그레치오라는 곳의 교회 동굴앞에 처음으로 구유를 만들어 공개했다.

성인은 하느님의 아들이 가난과 궁핍속에서 사람들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싶었고 교황의 허락을 받은 다음 구유를 만들고 소와 나귀를 아기예수 옆에 배치하였다.

이사야 예언대로「소는 주인을 알고 나귀도 주님의 구유를 알고 있건만 이스라엘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장면을 성탄축일에 재현시키면서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프란치스꼬의 구유는 교황 허락을 받아 대중 앞에 공개한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러나 성탄구유 공경은 사적으로 이미 베들레헴에서 시작됐고 그 베들레헴 구유가 로마로 전해졌다.

로마 성마리아대성전에는 베들레헴 외양간에서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뉘었던 여물통 조각이라고 알려지는 나무조각이 12세기 경부터 보존돼 있다. 이때 베들레헴 구유를 공경하는 뜻으로 예수성탄 밤 자정미사가 교황집전으로 거행됐다. 이를 본떠서 흔히 성탄절 일반 교회에서는 나무구유를 제대위나 옆에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말엽과 17세기초 알프스산 인접 제국에서는 성탄구유 공경이 일반화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17세기 바로크시대는 나폴리구유 작품의 전성기였다.

독일지역에는 18·9세기에 이르러 일반 서민가정에 성탄구유를 설치하는 것이 토착화 되었다.

19세기에는 인쇄그림이 출판사에 의해 대량생산 되면서 구유제작이 보다 대중화되는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