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21. 성모영보

고종희·한양여대 교수·서양미술사
입력일 2009-10-27 수정일 2009-10-27 발행일 2009-11-01 제 2670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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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의미 담긴 장식들 상세히 묘사  
벨기에 고위층 가정 배경
백합은 ‘성모님 순결’을 
물병은 ‘죄 씻어냄’ 상징
네덜란드 화가 작품
편집증적 세부묘사 특징
작품 해설 : 로지에르 반 데르 바이덴, ‘성모영보’, 패널에 유채, 1435, 86 x 93 cm, 파리, 루브르.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님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을 ‘성모영보’ 혹은 ‘수태고지’라 부른다. 둘은 같은 뜻이지만 성모영보는 성모님의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가 있고, 수태고지는 말 그대로 예수님의 잉태를 고지한다는 뜻이다.

4대 복음서 중 성모영보를 소개하고 있는 곳은 루카복음이 유일하며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대천사 가브리엘의 갑작스런 출현에 마리아는 깜짝 놀라 답하였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하느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죄 많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보낸 신의 육화(肉化)라는 신학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화가들은 이 신비로운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천사가 방문했을 당시 성모님이 계셨던 장소와 그녀의 모습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는 화가들 각자가 풀어야 할 과제였다. 성경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화가는 성모님이 성전에 걸어둘 커튼을 짜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는가 하면, 또 어떤 작가는 부유한 가정의 조신한 처녀답게 수를 놓고 있는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 중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성경를 읽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다. 그녀가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은 성경적 근거도 있었는데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라는 이사야(7, 14)서가 그것이었다.

그림의 배경은 보통 집 안이거나 집 밖으로 설정되었다. 천사 가브리엘은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가지를 들고 있거나, 성모님의 순결의 상징인 백합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흔히 그려졌고, 성모님의 모습은 앞서 언급한 대로 소일을 하다가 뜻밖에 천사의 방문을 받고는 화들짝 놀라는 모습, 혹은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며 순종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로저 반 데르 바이덴(Rogier Van der Weyden)의 ‘성모영보’는 실내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마리아는 책을 읽고 있는 모습으로 설정되었다. 이 그림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은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으며, 그가 흔히 들고 있는 성모님의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은 이미 꽃병에 꽂아져 있다.

이 그림은 화가가 활동했던 벨기에 지방의 한 고위층 가정의 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림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노라면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이 많은 기물들이 그려져 있어서 이쯤 되면 네덜란드 지역 화가들의 편집증적인 세부묘사에는 그만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순한 그림의 장식이 아니라 성경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중 한 두 개만 언급하자면 왼쪽에 놓인 작은 물병의 물은 죄를 씻어냄을 의미하고 그 옆의 작은 사과는 원죄의 근원이 된 금지된 과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화가는 성경의 이야기를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현실 속의 실감나는 이야깃거리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서양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