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같은 언행으로 법조계 곳곳에 교회의 이름을 아로새겨온 김경회(안드레아·서울 서초동본당)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이 8월 7일 오전 2시30분 향년 62세로 선종했다.장지는 용인 천주교 묘원.
대전교구 총대리 윤주병 신부를 비롯한 서울대교구 함세웅 신부, 박기주 신부, 대구대교구 김부기 신부 등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장례미사가 봉헌된 8월 10일 오전 8시30분 서울대교구 서초동성당은 고인의 올곧은 정신을 기리는 이들의 추도의 염으로 가득한 듯했다.
1962년 고등고시 사법과 14회에 합격한 후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딘 고 김원장은 소신에 어긋나면 어떤 명령에도 따르지 않는 대쪽검사로 이름을 날리며 권력과 맞서온 이로 알려진다. 인천지검장으로 있던 5공 정권 때는 역사 속에 묻힐 뻔한 「부천경찰서 권인숙씨 성고문사건」을 밝혀내는가 하면 대검 중수부장 시절에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마무리하며 치안본부장을 구속하기도 하는 등 올곧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인들이 『한 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정의로 끝맺음을 하는 이』로 회상하는 고 김원장은 따르는 후배들이 많아 김경한 서울고검장을 비롯해 임휘윤 부산고검장 등 법조계는 물론 정·관계의 수많은 인사들을 대자로 둬 그의 인품을 짐작케 한다. 그가 남 모르게 성모의 마을을 비롯한 밀알회, 성소후원회 등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온 일은 가까운 이들만 아는 사실이다.
서울지검장, 부산고검장 등을 거쳐 지난 99년부터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해온 그는 자신의 죽음마저 바른 위치에서 놓고 싶었을까, 투병 중에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의 이같은 삶은 오는 9월1일부터 50여회에 걸쳐 한 중앙일간지에 연재된 후 「이제 자유인이 되어」라는 제목의 한권의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