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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우리는 순교자의 후손입니다’ - 하느님의 종 정약종 후손 정호영씨 인터뷰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4-08-05 수정일 2014-08-05 발행일 2014-08-10 제 290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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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에서 이름 삭제됐지만 할아버지 신앙 200년간 이어져”
16일 시복식을 통해 우리는 124위의 신앙선조를 공적으로 존경하고 그들의 삶을 따르게 된다. 7월 30일 이번 시복대상자인 하느님의 종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이 살던 마을, 마재성지에서 정약종의 후손 정호영(클레멘스·56·수원교구 호계본당)씨를 만났다.

“영광스럽죠. 마재가 제 고향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정씨는 정약종의 동생인 정약용의 직계 7대손이다. 정약종의 순교이후 벼슬길이 막혀 생계가 어려웠던 후손들은 마재를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정씨의 선조 역시 마재를 떠났지만, 정씨는 마재를 고향으로 여긴다. 혈연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신앙의 선조인 정약종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선조에 정약종 할아버지가 계신지도 몰랐습니다. 후에 그분의 저서인 「주교요지」에서 굉장한 놀라움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정약종이 순교한 1801년 이후 160년간 나주 정씨 족보에는 정약종의 이름이 삭제됐다. 정씨 집안에게 정약종은 지우고 싶은 존재였던 것이다. 집안의 남자들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신앙만은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교회의 품안에서 살아왔습니다. 선조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정씨는 6대 독자였지만 어려서부터 제사를 하지 않았다. 어릴 적 “제사를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의 조부는 “간소하게 하라 했다”고 흘리듯 말할 따름이었다. 겉으로 내세우지는 못했지만, 제사를 하지 않는 전통을 지키고 부인들은 세례를 받게 해 신앙을 이어왔던 것이다. 덕분에 정씨는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 젊은 시절 「주교요지」로 만난 정약종을 통해 신앙의 깊이는 더욱 깊어져, 바쁜 일상 속에서도 본당 청소년위원장, 성가대단원 등으로 활동하고 지금도 레지오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집안과 신앙의 선조인 정약종의 믿음을 본받으며 살아온 정씨는 시복식을 통해 교회뿐 아니라 온 사회가 정약종의 모범을 배우길 바란다.

“이번 시복식에 특히 교황님 오시는데 이 행사가 단순하게 한국교회만의 행사가 아니라. 한국 전체가 다시 한 번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하는 「주교요지」가 설명하는 이 근본적인 질문들을 생각하는 기회 됐으면 합니다.”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