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총대리 옥현진 주교
“사람을 최우선 생각하는 사회 기폭제 희망”

스스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손을 잡아주었지만 교황을 보면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극적인 변화가 있지는 않더라도 물질만을 추구하던 모습에서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회로 바뀌는 기폭제가 되길 희망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물질중심주의와 이기주의가 얼마나 만연해있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옥 주교는 신자들이 「간추린 사회교리」를 한 번이라도 읽고 자기 자신만이 아닌 우리와 사회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아시아 선교 과제에 대해 좀 더 큰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어나 비추어라’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구성원 모두가 순교자의 정신을 본받아 마음에 담아둘 말씀인 것이다.
“교황님께서 방한 중에 보여주신 말씀과 태도들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또 가톨릭교회적으로나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행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김진영 기자>
밀양 송전탑 공사 저지해온 한옥순 씨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우리에게도 평화가”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주민인 한옥순(67세) 씨는 2005년 송전탑 건설 계획이 발표되고 2007년 승인이 떨어져 송전탑과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된 초창기부터 온 몸을 던져 송전탑의 공사 강행을 저지해온 인물이다.
7년 넘게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힘써온 한옥순 씨는 여기저기 성한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강하게 만든 것은 2012년 1월 16일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스스로 죽음을 맞은 이치우 씨의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밤새워 시체를 지키며 우리도 함께 죽자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우리를 죄인 취급하는 공권력의 모습에 착잡한 마음 위로받을 길이 없었어요.”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어느 날 수녀 한 사람이 그녀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을 전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이라고. “돈도 힘도 없는 우리에 평화가 올까요?” 사진을 받으며 그렇게 물었던 한옥순 씨에게 이제는 그 사진은 없어져서는 안 될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결국 송전탑은 건설되었고 남은 것은 10억원의 손해배상과 50여 건의 소송들뿐이다. “교황님이 오시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도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요?” 상처투성이의 그녀가 가슴에 품은 단 한 가지 절박한 소망이다.
<이도경 기자>
서울 오류동본당 김종원 어린이
“잘못 뉘우칠 기회주는 자비로운 판사 꿈꿔”

종원이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무조건 처벌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뉘우칠 기회를 주고 용서하는 판사가 되는 게 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소식을 들었을 때, 종원이는 뛸 듯이 기뻤다.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못해도, 종원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종원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고 나면, 잘못한 사람들을 무조건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 뉘우칠 기회를 주는 판사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 종현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얼굴을 그릴 것이다. 한국의 판사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얼굴을 닮도록, 그리고 자신도 그 얼굴을 닮도록. <김근영 기자>
서울 종로본당 정창묵 씨
“잃어버린 양 돌아오는 은총의 시간 기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를 집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씨는 크게 감격했다. 시복 대상자에는 포도청에서 돌아가신 5명의 순교자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신앙을 우리가 헛되게 해서는 안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정씨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행사를 통해 신자들이 한국사회에 좋은 표양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정씨는 이제 세 번째로 교황을 맞는다. 1983년·1989년 두 차례에 걸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한국방문 때 정씨는 단순히 교황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다리는 정씨의 마음은 새롭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좋은 표양에 감화된 일반인, 비신자, 냉담자들 모두가 교회로 돌아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김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