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상살이 복음살이] 특별기고/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바라본 사드 배치 논란

박문수 신부(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입력일 2016-07-26 수정일 2016-07-27 발행일 2016-07-31 제 3005호 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평화, 과연 군사적 힘으로 지킬 수 있을까?
박문수 신부
필자는 7월 24일자 가톨릭신문을 보고 매우 기뻤다. 1면에 “평화는 힘이 아닌 신뢰로 확립된다”는 제목 아래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의 우리나라 배치를 반대한 성명서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성명을 낸 것과 생명평화미사에 대한 소식 등이 실렸다.

필자는 미국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1973년에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아 ‘한국 사제’가 되었고 1985년에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 귀화했다.

미국 출신으로서 지난 30년 동안 모국의 지나친 군비지출과 여러 차례의 전쟁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 법적인 한국 사람으로서 한반도에서 정의와 평화를 바탕으로 민족화해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국 주교님들께서 교회의 평화에 대한 가르침에 따라 ‘사드’ 배치를 반대한 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

가톨릭교회의 평화에 대한 가르침은 현실적이면서 전 세계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1960년대 미국·소련 핵전쟁 위험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일으키고 있을 때 성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반포했다. 핵무기가 있는 세계에서 정의로운 전쟁이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세계 나라들은 무기 경쟁 대신에 온전한 인간 개발에 힘을 쏟도록 촉구했다.

그 후부터 교회는 유엔과의 협력 수준을 향상시켰고 이는 나중에 미국과 소련이 핵폭탄 수를 감소하기로 한 조약에 영향을 주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의 후임 교황들도 하나 같이 무기 경쟁을 비판했고 군비지출 대신에 온전한 인간개발을 위한 지출과 자연을 보전하는 노력만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쳐왔다.

사드 배치 결정 후 교회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7월 18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생명평화미사’ 후 미군부대 앞에서 평화 집회를 열고 있는 참가자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다음 1991년에 반포한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동서 간의 분쟁에서 실시된 군비가 철폐되면 무한한 재원이 처분 가능하게 될 것이다. 무기 거래를 반대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만일 일반 전쟁 대신 쟁의를 해결하는 전적으로 믿을 만한 협정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제3세계 국가들에서 군비를 조정하거나 감축할 원칙이 효력을 발생한다면, 그 재원은 더욱더 풍부할 것이다”(28항)고 했다. 성인이 25년 지난 지금의 세계 군비지출을 본다면 몹시 슬퍼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에 대한 이 가르침을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강조하고 있다. 우리 주교님들은 새로운 냉전을 일으킬 수 있는 ‘사드’ 배치를 위한 지출 대신에 군비 축소를 요청하는 이러한 평화에 대한 가르침을 적절하게 적용했다.

교회는 오랫동안 평화에 대한 확실한 가르침을 세상에 제시해왔다. 하지만 신자들 가운데서도 적잖은 수가 그 가르침을 ‘이상주의’라고 생각하면서 강한 군사력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그러한 생각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강한 군사력을 추구하는 세력들은 그 경쟁을 끝내지 못하고 결국 지나친 군비지출로 인해서 사회가 불안정하게 된다. 강한 군사력은 단기적으로 볼 때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어두운 미래만 가능하게 하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현재 동북아시아는 끝이 보이지 않은 군비지출 경쟁에 빠져 있고 이는 미국의 탓이 크다. 미국은 1990년대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하소연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군비지출을 늘렸다. 세계 군비지출을 연구하고 보고하는 SIPRI의 2015년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의 군비지출은 그 다음으로 지출이 많은 일곱 나라(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영국, 인도, 프랑스, 일본)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그리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은 동북아시아에서 군비 경쟁을 벌이고 있다.(한국의 군비지출 순위는 세계 10번째다.)

전 세계적으로 예외 없는 기후변화나 자연 파괴, 빈부격차와 빈곤 등 오늘날 앓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인류가 적절히 대응할 수 없는 이유 중에 지나친 군비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는 미국의 책임이 크다.

미국의 군비지출이 교회의 가르침에 확실히 어긋난 것이지만, 이에 대한 미국 주교회의의 가르침은 너무나 약하다. 예를 들면 미국 주교회의가 낸 사목 교서 「충실한 시민 의식을 위한 양심 형성」(Forming Consciences for Faithful Citizenship)(2015)의 정치적 이슈 부분을 보면 테러에 대한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동의와 세계 무기무역을 주도하는 미국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미국의 지나친 군비지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에 비해 한국 주교회의는 무기경쟁이 평화를 마련할 수 없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잘 전하고 있어 희망을 준다.

미국 군인들은 사드 배치는 공격이 아니고 방어용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세계 군사 전략에 있어 공격과 방어의 구별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헨리 키신저 시대부터 상식이 된지 오래다. 공격에 대한 보복을 막을 수 있는 방어는 사실상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미군과 가까운 관계를 맺은 우리나라의 국방 정책에 대하여 평가할 때 미군의 논리를 벗어나 교회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박문수 신부(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