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 순교자현양위원회 ‘기억 그리고 기념’전 11월 13일까지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16-09-20 수정일 2016-09-27 발행일 2016-09-25 제 301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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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브뤼기에르 주교부터 제10대 노기남 대주교까지
역대 서울대교구장 유물·편지·사진에서 한국교회사를 보다

왼쪽부터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편지.(1845년) 초기 교회 신자들이 사용하던 기도서.(십이단)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선교 의지를 밝힌 첫 번째 편지.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정순택 주교)가 명동 옛 주교관(사도회관)에서 ‘기억 그리고 기념(Memory & Commemoration)’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역대 교구장들이 남긴 유물과 사진, 편지, 공문 등을 통해 조선 후기 젊은 지식인 집단의 신문화 수용과정을 엿볼 수 있다.

병인순교 15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기억 그리고 기념’전은 한국사의 맥락 안에서 한국교회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더욱 의미 있는 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교구 설정 185주년이었던 지난 9월 9일 개막한 이번 전시회는 병인년 순교 150주년 기념의 해 폐막미사가 열리는 11월 13일까지 약 2개월간 계속된다.

우선 이번 전시회가 열리는 옛 주교관은 그 자체가 바로 한국교회사의 일부다. 1890년 코스트 신부가 설계한 2층 벽돌건물인 옛 주교관(사도회관)은 1891년 4월 뮈텔 주교의 주례로 축복된 후 여러 용도로 사용돼왔다. 실제 이곳에서 뮈텔 대주교·라리보 주교·노기남 대주교가 거주하기도 했다.

우선 전시회에서는 옛 주교관의 천정, 벽의 벽돌, 아치형 구조, 창문, 발코니 등 옛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켜 본래 공간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드러낸다.

특히 전시된 서한들을 통해, 역대 교구장들이 직접 남긴 교회사를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제1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선교를 자원하겠다는 의지를 확연히 드러낸 1829년 5월 19일자 서한 전문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소개된다. 또 역대 교구장들이 작성한 한국교회 순교 사료들이 전해져온 과정을 통해, 한국천주교회사 저술의 맥락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회에서는 역대 교구장들이 펼친 시복·시성을 위한 노력도 엿볼 수 있다. 교구장들이 순교자들의 업적을 다양한 경로로 정리한 덕분에 수많은 순교자들의 업적이 시복·시성을 위한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었다.

전시회장을 둘러본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기억 그리고 기념전에서 주님께서 한국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신 섭리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이번 전시회 관람이 앞으로 신앙을 다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보다 많은 이들의 관람을 당부했다.

한복 입은 뮈텔 신부.(1885년)

뮈텔 대주교 회갑 기념 부조.(1914년)

#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서한만으로 꾸민 제1전시실

1층 제1전시실은 ‘서한(書翰, Letter)의 방’으로 꾸며졌다. 1831년 조선대목구가 설정되고 브뤼기에르 주교가 제1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되기까지 초기 한국교회의 신자 공동체가 보여준 노력의 흔적을 서한, 즉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보여준다. 천주교회사 관련 전시회에서 서한으로 전시 공간을 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31년 조선대목구 설정이 이루어지기 이전 신자들이 발송한 서한들 속에는 1784년 이승훈의 세례 이후 평신도에 의해 자생적으로 일구어나간 공동체의 헌신적인 역사가 담겨 있다. 특히 이 편지들을 번역해 교황청 포교성성과 파리외방전교회 등에 보내, 조선 신자들의 노력을 알리고 호소하는 노력을 통해 마침내 조선에 대목구를 설정하게 한 선교사들의 서한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박해 속에서도 희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국교회 신앙 선조들과 선교사들의 서한들은 주제와 작성 시기별로 크게 4개의 장(章)으로 구분해 소개한다. ▲첫 번째: 조선의 자생적 평신도 공동체(1784~1790) 시기 ▲두 번째: 박해와 순교(1791~1802) 시기 ▲세 번째: 조선 교회의 재건을 위한 시도들(1811~1831)이 행해진 시기 ▲마지막 장: 조선대목구의 초창기(1831~1836)이다.

# 역대 교구장들의 삶과 신앙을 한눈에 펼쳐낸 제2전시실

2층 제2전시실 ‘서사(敍事, Narrative)의 방’은 한국교회 순교 100년사를 이끌었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역대 교구장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브(archive) 자료 열람 방식으로 제시한다. 이 전시는 역대 교구장들의 삶이 조선 후기와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기획했다. 우선 지도, 보고서, 사진, 편지와 같은 유물들은 조선후기 사회 변화를 거쳐 일제강점, 분단 등을 겪으며 근대국가로 형성되어 갔던 과정을 보여준다. 2층 전시실 초입에 위치한 패널의 문구 ‘복음의 비옥한 씨앗들’은 1962년 한국의 교계 제도 설정을 위해 발표한 성 요한 23세 교황의 교서 제목에서 발췌했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최대의 박해기와 수난기였던 제6대 리델 주교의 재임기(1869~1884)는 근세 한국사 최대 격동기이기도 했다. 리델 주교가 6개월 동안 옥중에서 작성한 수기는 병인박해 직후 혼란스러운 조선 후기 사회상을 담고 있다. 제8대 뮈텔 대주교는 황금색 바탕의 들판에 한국을 의미하는 태극을 가시와 장미 덩굴로 떠받치는 형상을 자신의 문장에 담아, 박해 속에 피어나는 한국교회를 표현했다. 당시 주교 문장에는 이미 태극 문양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제10대 노기남 대주교의 문장 하단부에 그려진 성곽과 삼각산은 서울을 상징한다. 전시회는 이렇게 역대 교구장들의 삶이 우리 터전에 뿌리 깊이 자리했음을 보여준다.

교계제도 설정 공포식.(1962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조선교구 설정 185주년 기념일이었던 9월 9일 막을 올린 ‘기억 그리고 기념’(Memory & Commemoration) 특별전에서 뮈텔 대주교의 유품을 보고 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