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쉼터] ‘장애인의 성’(性) 주제로 연극 펼치는 진해장애인복지관 ‘햇빛촌’

신동헌 기자
입력일 2017-01-10 수정일 2017-01-10 발행일 2017-01-15 제 3028호 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장애인에게도 소중한 성…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지적 장애인 재활 위해 2010년 창단
7여 년 활동하며 다양한 공연 펼쳐와
‘성’ 주제 연극… 장애인 교육 효과도

햇빛촌 단원이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연극제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장애인에게도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있습니다. 우리의 성은 우리가 주체입니다.”(연극 ‘아름다운 우리의 성을 만들자’의 마지막 대사)

지난해 12월 진해장애인복지관(관장 이흥우 신부) 지적장애인 연극단 ‘햇빛촌’(단장 김선혜)은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한 연극 ‘아름다운 우리의 성을 만들자’(이하 아우성)를 선보였다. 성을 주제로 연극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텐데 장애인의 성을, 그것도 지적장애인들이 배우로 나섰다는 소식에 1월 5일 진해장애인복지관에서 그들을 만났다.

햇빛촌 단원들은 오후 5시가 되자 하나둘 연습실로 모였다.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장난치던 단원들이 대본을 집어 들자 눈빛이 달라졌다. 큰 목소리로 연습하며 배역에 몰입하는 단원들을 보니 연극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2010년 시작된 햇빛촌이기에 단원들은 정기공연과 연극제, 초청공연까지 수십 차례 무대에 오르고 여러 작품을 만났지만 이번 ‘아우성’은 좀 각별하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들은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해도 자각하지 못하거나 의사소통이 힘들어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를 악용하여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특히, 여성장애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있다. 또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성을 잘 알지 못하는 장애인이 호감 또는 별다른 의도 없이 신체적 접촉을 하여 상대방에게 성적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상황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큰 문제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햇빛촌은 이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목소리로 장애인들의 성에 관해 말하고 올바른 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기로 마음먹고 ‘아우성’을 준비했다.

준비과정에서 햇빛촌은 장애인들의 눈높이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기로 결정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대본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지적2급 장애인 햇빛촌 단장 김선혜(41)씨는 성에 관해 말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한다. “연출 선생님과 단원들이 다 같이 모여 자신이 겪은 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부끄러워 서로 말하지 못했었습니다. 이야기해 본 적이 있었어야죠.” 단원들은 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거나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부터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단원들은 장애인들 주변에 ‘성’과 관련된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르고 지나갈 뿐이었지 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이었다. 또한, 자신도 성적 욕구를 느끼고 있으며 그것을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제작 단계에서 어떤 형태로 풀어내는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처음에는 아동극 형태도 생각했었습니다. 동물들이 나와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요. 그러나 우리와 같은 지적장애인들에게는 더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파격적인 대본을 준비했습니다.”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볼 때 연극은 선혜씨가 말하는 것처럼 파격적이진 않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한다’,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멈춰야 한다’,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와 같은 이야기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들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에게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주변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대본을 받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됐었습니다. 연습도 힘들었고요. 그런데 연극을 끝내고 나니 다른 공연보다 보람을 더 많이 느꼈습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지적2급 장애인 한보란(데레사·34)씨의 말이다. 보란씨뿐만 아니라 모든 단원이 연극을 통해 기쁨을 느꼈고 특히, 주변의 장애인들이 잘 봤다며 성에 대해 조금은 알겠다는 이야기를 해줬을 때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처음 하는 파격적인 연기에 실수도 있었다. 창단 때부터 햇빛촌에서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황건평(세례자요한·29)씨는 무대가 익숙할 법한데 이 연극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밀양의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첫 공연을 했었습니다. 너무 긴장됐어요. 그러다 보니 대본을 두 장이나 건너뛰었습니다. 상대 배우도 당황하고 저도 당황하고 배우들 모두 당황했죠. 결국, 50분 공연을 20분 만에 마치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다른 단원들도 그날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말하면서도 어색하고 부끄러워 그럴 수 있다며 건평씨를 위로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연습도 잘하지 못했던 단원들이지만 이제는 능숙하게 성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가 지적장애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교육 연극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진해장애인복지관 김성미 팀장은 단원들이 연극 연습뿐 아니라 성교육도 열심히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찾아가는 성교육을 펼칠 예정입니다. 연극을 통해서요.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것입니다. 장애인들의 성에 대해 장애인들이 직접 연기를 통해 보여주니 교육 효과가 뛰어납니다. 이를 위해 햇빛촌 단원들은 성교육도 열심히 받고 있습니다. ‘아우성’을 통해 장애인의 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길 바랍니다.”

2010년 장애인 재활프로그램으로 연극반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지적장애인들이 대본과 동선을 외울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햇빛촌은 무대에서 햇살과 같이 빛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한 걸음 더 내디뎌 당당히 장애인의 성을 외치고 있다.

“그래요. 우리 다 같이 우리들의 아름다운 성을 만드는 겁니다. 알겠지요?”

※공연 문의 055-540-0431 진해장애인복지관

지난해 12월 21일 진해민방위교육장에서 장애인 연극단 ‘햇빛촌’ 단원들이 정기공연을 마치고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진해장애인복지관 제공

신동헌 기자 david050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