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쉼터] 카페와 도서관으로 지역 ‘문화 복음화’ 구심점 된 부산 아미본당

방준식 기자
입력일 2017-07-04 수정일 2017-07-05 발행일 2017-07-09 제 305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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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본당에 문화 입히니
  천국으로 거듭났죠”
 가난한 판자촌에 자리잡은 본당
 열악한 환경 딛고 ‘문화 복음화’ 힘써
 도서관·쉼터 만들어 지역민에 개방
 관광객 찾아오는 명소로 발돋움
“하느님 사랑 꽃피우는 씨앗 되길”

부산교구 아미본당 ‘천국 도서관’ 전경. 컨테이너 형태로 예쁘게 색칠된 도서관에는 신앙 서적은 물론, 역사와 철학,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도서들이 준비돼 있다.

한국전쟁 피난민 판자촌 역사를 간직한,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산복도로 달동네’에 외롭게 서 있던 한 본당. 부산교구 소속 본당 중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던 이 본당에 기적의 열매가 열렸다. 새 주임신부 부임 2개월여 만에 모든 것이 바뀐 것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신자들과 관광객들을 위한 카페가 생겼고, 많은 책을 갖춰놓은 도서관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미래의 꿈을 꾼다. 문화 불모지였던 곳에 새로운 문화를 심고 복음을 전하는 성당으로 당당하게 나가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문화 복음화의 열정이 그 어느 곳보다도 높이 솟아오르고 진심이 하느님께 맞닿아있는 곳, 부산교구 아미본당(주임 서정웅 신부)을 직접 찾아 궁금증을 해결해보기로 했다.

부산 서구 아미동 산복도로로 올라가는 길은 자동차가 힘에 겨워할 정도로 가파르다. 산이 많은 부산 특성상 산자락을 따라 주택이 들어서 있다. 해안가에서 쳐다보면 외국인들이 ‘원더풀’을 외칠 정도로 야경이 화려한 곳이지만, 이 일대에는 ‘판자촌’으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 서구 아미동과 사하구 감천동 일대는 한순간에 고향을 잃어버린 피난민들의 동네였다. 합법적으로 집을 구하기 힘들었던 이들은 산자락을 따라 판잣집을 지었다. 힘겨운 삶의 터전, 그곳에서 부산교구 아미본당 역사가 시작됐다.

‘부산의 낙후된 달동네’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지역에 위치한 아미본당 역시 어려운 형편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감천동 일대에 ‘도시재생사업’이 실시되면서 문화마을이 조성되고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다. 죽어가던 마을은 부활하기 시작했다. 역동적인 역사 흐름을 고요히 지켜보던 아미본당에도 지난 2015년 서정웅 주임신부가 부임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아미본당에 다다를 무렵, ‘감천문화마을 입구’ 표지판이 보이고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대형버스들이 분주히 드나들고 있었다. 지난 2010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환경미화사업이 펼쳐지고 부산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면서 아미본당 일대 주택가는 연간 10만 명 이상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분홍과 파란색 등으로 예쁘게 치장한 주택들, 좁고 가파른 도로를 따라 설치된 예술 작품, 서민들의 향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삶의 터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공영주차장 바로 앞 본당 입구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더 테레사 수녀 대형사진이 반갑게 신자들과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비신자들에게도 친숙한 분들의 사진을 걸어놓음으로써 ‘열린 성당’이라는 이미지를 알리는 모습이었다.

본당으로 들어서자 먼저 ‘천국 카페’라고 이름 붙여진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내부에는 커피와 간단한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설비, 의자와 테이블이 간소하게 차려져 있었다. 카페로 들어서자 서정웅 주임신부와 신자들이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부임했을 때 성당 주일학교 아이들이 쉴 곳조차 없고 손님이 왔는데도 모실 곳도 없었죠. 그래서 곧바로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신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말이죠.”

서 신부는 황폐해져 용도조차 불투명했던 창고 건물을 근사한 카페로 만들어 무료 개방하면 신자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천문화마을을 찾는 내외국인들이 꼭 한 번 성당에 들러 하느님 사랑을 느끼고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카페 뒤편으로는 ‘천국 도서관’이 들어섰다. 컨테이너 형태로 예쁘게 색칠된 도서관에는 신앙 서적은 물론, 역사와 철학,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도서들이 준비돼 있다. 본당 곳곳에 소장된 책만 5000권이 넘는다. 도서관에 앉아 편하게 책을 보고 있노라면 창문 너머로 부산의 아름다운 해안가 모습도 즐길 수 있다. 도서관 아래쪽에는 장애인용이 별도로 차려진 화장실이 깔끔한 모습으로 개방돼 있다. 마침 본당을 찾은 한 일본인 관광객들은 “감천문화마을의 분위기와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성당”이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레지오 회합이나 주일학교 학생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이는 ‘천국 쉼터’도 마련돼 성당은 신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말 그대로의 ‘천국’으로 변모했다. 성전 주변 인테리어도 서 신부가 직접 나서 깔끔하게 정비했다.

“예전에 아미성당이 낡고 생기 없었던 당시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지금 변모된 모습에 깜짝 놀라실 겁니다.” 서 신부는 성당 공간을 알차게 꾸미게 된 사연을 묻는 질문에 감회에 젖어들었다. 2015년 10월 주임으로 부임한 뒤 불과 2개월여 만에 지금의 모습으로 아미본당을 만들어낸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버려진 곳은 결국 어떤 이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마음을 먹으니 하느님 뜻대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지요.”

처음 카페와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신자들에게 설명하고 공사를 진행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었다. 본당 사정상 이렇다 할 재원을 확보하기 힘든 실정에서 1억 원이 넘는 공사비 중 상당 부분은 서 신부 본인이 부담했고 신자들과 독지가들도 십시일반 보탰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주임신부의 땀과 노력, 신자들의 간절한 기도가 한데 어울려 새 역사를 열었다.

본당 신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본당이 아름답고 문화가 가득한 곳으로 변모하자 신자들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예전처럼 ‘가난한’ 본당이 아니라, ‘행복이 넘치는’ 본당이 됐기 때문이다. 주일학교 교사 김현선(효주 아녜스)씨는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아이들이 이제 천국 도서관 등에서 책을 읽게 됐다”며 “천국 카페와 쉼터 역시 아이들이 ‘성당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성소를 키우는데 크나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본당 재정분과장을 맡고 있는 윤남실(레베카)씨는 “어르신 신자 비율이 70%를 넘는 본당 특성상 어르신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전달해 드리고 싶었었는데 도서관과 카페가 마련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웃어보였다.

서 신부의 소망은 아미본당이 앞으로도 계속 지역사회와 어우러져 ‘문화를 통한 복음화’ 소명을 다했으면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장 소외된 곳에 따뜻한 사랑을 채워주신 분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가장 밑에서부터 작은 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시는 분이시죠. 저희 본당이 작지만 하느님 사랑을 꽃피우는 진정한 씨앗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산교구 아미본당 ‘천국 카페’ 전경. 예전에 창고 용도로 쓰이던 건물이 카페로 변모했다.

‘천국 카페’ 내부. 소박하지만 정성어린 마음이 인테리어 곳곳에 묻어나 있다.

예전의 아미성당 모습. 이제는 카페와 도서관 등이 들어서 신자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부산교구 아미본당 제공

아미본당 신자들이 서정웅 주임신부(맨 오른쪽)와 함께 ‘천국 쉼터’ 앞에서 즐겁게 담소하고 있다.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