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 칼럼] (38) 더불어 아름다운

박그림(아우구스티노) 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9-02-19 수정일 2019-02-19 발행일 2019-02-24 제 313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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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을 다 드러낸 겨울 숲에 깊이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 양지 쪽의 따사로움이 한껏 와 닿는 한낮의 숲에 들면 멀리서 휘몰아 내리는 바람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생명의 움직임으로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숲은 모여서 더욱 든든하고 아름답다. 바닥을 기는 덩굴부터 하늘을 찌르는 키 큰 나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으며 계절의 흐름에 맞춰 삶을 이어간다. 숲은 키 큰 나무만 기르지 않는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돼 주는 나무들의 삶을 우리는 생존경쟁이라는 말로 일컫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생존경쟁으로 가득한 숲이라면 늘 생명력으로 넘칠 수 있을까? 삶이 힘들 때 숲에 들어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음은 무슨 까닭이며, 숲에 들어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숲에 들어 나무를 끌어안을 때마다 떨림으로 와 닿는 나무들의 대답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내치지 않고 끌어안으며, 버리지 않고 품고 살아 온 나무들의 모습을 숲에 들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까닭이다.

그 숲에 깃들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의 삶도 생명의 그물망으로 촘촘하게 이어진 경이로움 자체임에도 우리는 약육강식, 승자독점으로 가득한 세상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 세상에서의 삶은 싸움에서 이기는 것뿐이며 진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숲에 들어 쉽게 부서진 보금자리와 주검들이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아니라 가끔씩 만나는 보금자리의 포근함과 죽어서도 스스로의 몸을 내어주는 짐승들의 보시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낄 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뒤돌아보게 된다.

나무 밑 짐승들 발자국 옆에 쪼그리고 앉아 따뜻한 햇볕 속에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거리며 졸음에 빠진다. 그들의 세상 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들의 삶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자연은 거칠고 두려운 존재이며 가까이 하기에는 왠지 꺼려지는 곳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자연을 가까이 할 까닭이 없다. 자연으로부터 멀어질 때 오직 결과만을 따지고 돈으로 가치를 매기는 세상에서 삶은 피폐해지고 희망은 절망을 이야기할 뿐이다. 서로에게 배려가 필요하듯이 자연에 대한 예의와 염치를 갖춘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 될까.

박그림(아우구스티노) 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