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화로 만난 하느님] (11) ‘제자들을 찾으신 예수님’

윤인복 교수rn(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입력일 2019-05-21 수정일 2019-05-22 발행일 2019-05-26 제 3146호 1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부활한 예수 깨닫는 제자들과 무심한 이들 대비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명조 대비와 대담한 구성, 실제 일처럼 생동감 부여
예수께서 빵을 떼는 순간 눈 열린 제자들 극적 표현
평범한 인물도 함께 담아 신앙 대하는 우리 모습 그려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으로 가는 예수님의 두 제자가 예수님과 식사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뒤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모두 제 갈 길을 갔다. 두 제자도 고향으로 가던 중 엠마오라는 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 영광에 들어감으로써 구약의 말씀을 이뤘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날이 저물어 식사를 할 때 빵을 들어 축복하고 빵을 떼어 주는 것을 보고 비로소 자신들이 만난 분이 예수님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화가들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난 예수님의 이야기를 두 가지 도상으로 나눠 그리곤 한다. 두 제자가 예수님임을 눈치 채지 못한 채 길을 걸어가는 장면과 숙소에 머물며 식사할 때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보는 장면이다.

■ 눈을 열어 주신 예수님

그림의 무대는 어떤 숙소다. 카라바조로 불리는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1571~1610)가 ‘엠마오의 사건’ 중 빵을 쪼개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바로 그 순간을 옮긴 것이다. 카라바조는 사실주의적 표현, 빛과 그림자의 대비와 극적인 구성으로 르네상스의 관념적 화풍에서 벗어나 근대 사실주의 회화 기법을 탄생시켰다. 그는 작품에 사실주의에 대한 고집과 대담한 구성을 이용하면서 방금 일어난 일 같은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카라바조의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1605~1606, 캔버스에 유채, 141x175cm,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주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가구도 없으며, 불필요한 곳에 시선을 빼앗길 만한 기물도 없다. 대신 밝고 어둠이 강렬하게 대비된 화면에는 다섯 명이 등장한다. 중앙에 예수님을 비롯해 좌우에 각각 제자 한 명씩 그리고 숙소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그 옆에 시중드는 여자가 눈에 띈다. 이들은 예수께서 빵을 떼는 순간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본다.

왼쪽의 등진 제자는 양손을 들어 깜짝 놀라는 동작을 하고, 오른쪽의 제자는 놀라운 감정을 강한 동작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는 양손으로 식탁을 잡고 몸을 앞으로 굽히며 순간적으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려 한다. 부활한 예수님의 현존을 당장 알리고 싶은 심정이 동작으로 드러난다. 마침내 안개가 사라지고 베일이 걷히듯 두 제자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순간의 반가움과 놀라움이 동시에 전달된다.

반면 오른쪽에 서 있는 두 인물은 카라바조가 성경 밖의 인물을 그려 넣었다. 두 인물은 주제의 의미를 심화시킨다. 서 있는 남자는 놀란 제자들과 달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듯,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다. 더욱이 옆에 나이 든 여자는 식탁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전혀 관심 없는 얼굴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손에 든 음식을 식탁에 잘 가져다 놓는 것일 뿐이다. 이 두 사람은 평범한 인물로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사람일 수 있다. 예수님의 현존은 특별한 인물이나 장소가 아닌 우리의 일상 안에서 체험할 수 있음을 말한다.

역시 이 그림에서 주의를 모으는 것은 식탁 위의 빵을 축복하고 있는 예수님의 얼굴이다. 많은 화가가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지만 카라바조가 그린 예수님은 특별하다. 예수님의 얼굴이 카라바조 자신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보다 5년 먼저 그린 같은 주제의 작품에서 예수님은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당당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됐다.

반면 이 그림 속 예수님은 위엄과 당당함보다는 나약하고 고통받는 인간적인 모습이며, 하물며 식탁에 왼손을 짚어 몸을 의존한 채 오른손을 들어 빵을 축복하고 있다.

카라바조의 불후의 명성은 작품에서 나오지만, 그의 유별난 인생에도 기인한다. 살아 있는 동안 그는 거만한 싸움꾼으로 이름이 났었다. 또 내기하다 사람을 죽인 이후에는 도망자가 됐다. 당국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그렸던 이 작품 속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화가 자신의 고통스런 삶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부활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오시고, 먼저 권하시고 먼저 먹이시면서 비로소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열어 주셨듯이, 카라바조도 예수님 안에 머물기를 희망했는지 모른다.

카라바조의 ‘과일 바구니’, 1597~1600년경, 캔버스에 유채, 54.5×67.5cm, 이탈리아 밀라노 암브로시아나 미술관.

■ 먹고 마실 것을 주신 예수님

거창한 식탁 차림은 아니다. 흰색 식탁보 위에는 빵과 포도주가 담긴 병이 있다. 저녁식사 자리지만 잘 차려진 식탁이 아니라 최소 음식만 갖춰졌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성찬례를 거행하고 있다.

빵은 생존에 꼭 필요한 양식으로 성찬례의 신비와 결합해 고유 의미가 있다. 포도주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계약의 피를 상징한다. 흰색 식탁보는 그리스도 수의의 기억으로 죽음과 부활을 상기시킨다.

이 작품에는 아주 소박한 식탁 차림이지만, 카라바조의 다른 그림들에는 식탁 위에 각종 과일이 담긴 바구니가 많이 등장한다. 그는 과일을 대개 상했거나 썩었거나 벌레가 파먹어 온전치 않은 모습으로 그렸지만, 작품 속 과일은 수많은 상징을 담고 있다.

포도는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피와 성찬례의 신비를 상징한다.

더욱이 청포도는 부활을, 검은 포도는 죽음을 나타낸다. 썩은 사과와 색이 변한 무화과, 복숭아는 인류의 원죄를 상징하고, 석류는 과즙과 껍질의 붉은색 때문에 그리스도가 흘린 피, 곧 수난을 의미한다. 하지만 열매의 달콤함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 후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들이 누리게 될 기쁨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식탁에 힘과 기쁨의 음식인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신 것이다.

윤인복 교수rn(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