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미담] 여의도 차량질주 사건으로 손자잃은 서윤범씨

우재철 기자
입력일 2019-06-24 수정일 2019-06-24 발행일 1991-12-08 제 178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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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가슴에 꽃피운 사랑" 

시력 되찾도록 수술 주선
손자 살해한 사형수에 솜옷ㆍ영치금 전달
"사형만이 능사 아니예요"
『용제군이 내 손자를 숨지게 한 살인범이었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한다면 냉대와 질시속에서 살아온 용제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여의도광장 차량질수 사건으로 손자를 졸지에 잃어버린 윤신재군의 할머니 서윤범(로사리아ㆍ58세)씨는 11월 29일 용제군이 수감돼있는 영등포 교도소를 찾아가 그를 면회하고 솜 죄수복과 양말, 영치금을 넣어주는 사랑을 베풀었다.

용제군을 면회하고 돌아온 서윤범 할머니는『잘못했다며 공포에 떨고 있는 용제의 모습을 보고는 그러한 범행을 저지르게한 책임이 우리 사회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다』며『사형만이 이러한 비극들을 해결할수 있는 능사가 아니라 용서가 전제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눈이 어둡고 어느 누구도 그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 사회적 냉대속에 살아왔던 모습이 역력한 용제군의 손을 잡고 신재군의 할머니는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서 용제군에게 선물하려고 준비해 갔던 책도 되가져 올수 밖에 없었던 서씨는 집에 돌아와 한국에서 사시(斜視)계의 저명인사인 이철재박사에게 용제의 눈을 고쳐줄수 있을까 의논차 연락을 취했지만 때마침 이박사가 외유 중이어서 귀국하는대로 용제의 눈을 치료하게 할생각이었다.

서씨가 이처럼 용제의 눈을 고쳐주고 싶은 이유는 앞으로 살아갈 1~2개월동안이라도 세상을 바르게 보고 또 책이라도 볼수 있게 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하겠다는 가톨릭신자로서의 양심을 속일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씨부부는『우리의 사랑하는 신재(가브리엘)를 하늘나라에서 큰 일꾼으로 키우시기 위해 세상에 공표하고 곧 바로 데려간 모양』이라고 굳게 믿으며 신재가 사고를 당한 매주 토요일이면 할아버지와 함께 장미다발과 성수를 들고 사고 현장을 찾아 기도를 드리고 있다.

또 영등포성당에서 토요일마다 신재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서씨 가족은 보기드문 가톨릭신자 집안으로서 신재군의 아버지 윤용훈(안셀모)씨는 가톨릭언론인회 사목국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신앙의 힘이 아니었다면 슬픔을 이겨내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서씨의 눈에는 아직도 신재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듯 신재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가지고 다녔던 가방을 꼭 끌어안고 잠시도 놓을 줄을 모른다.

맞벌이 부부인 아들내외를 대신해 신재를 키워온 까닭으로 손주녀석에게 유낙히 더 정이 깊었던 서씨는『오늘도 친할머니 하며 두손을 벌리고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올것 같아 하루에도 수십번씩 출입문을 바라보곤 한다』며『쌍동이 여동생인 이재가 보고 싶어도 이재를 보면 그옆에 신재가 금방이라도 따라 들어올것 같아 이재의 얼굴 보기가 두려워 진다』며 신재에 대한 떨칠수 없는 사랑을 피력했다.

한편 김용제군은 11월 30일 1심공판에서 사형이 선고됐으며 재판부는 선고이유를 통해『김피고인이 불우한 환경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점은 인정하지만 이무런 원한도 없는 무방비 상태의 시민을 살상한 범죄 행위는 용서할수 없다』고 밝혔다.

우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