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45) 농성장에서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9-09-24 수정일 2019-09-24 발행일 2019-09-29 제 316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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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이 쏟아지는 한낮의 농성장은 찜질방을 떠올리게 한다.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리다 해가 기울면 천막 속으로 들어가 밤을 맞는다. 온몸은 끈적거리고 헐떡거리는 숨소리는 자동차의 폭력적인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밤새 무더위와 소음에 시달리고 나면 머릿속은 텅 비고 어떻게 밤을 지새웠는지조차 가물거린다.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천막에 기어들어 찾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지 다시 뇌까리며 하루를 열어 간다. 출근길 수많은 사람을 바라보며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둥근판을 치켜들고 서서 나의 뜻을 펼친다.

지난 7월 설악산에서 청와대까지 200㎞ 도보 순례를 시작하면서 대청봉에 올라 설악산 어머니께 큰절하며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백지화시키고 어머니의 상처가 아물고 아픔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저항의 길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장마철과 겹쳐진 일정으로 폭우와 무더위는 발걸음을 지치게 했지만 멈춰서도 안 되고 멈출 수도 없는 길을 걸어 설악산이 어떤 존재인지, 우리와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설악산이 어떻게 무너지게 될 것인지 알렸다.

설악산을 돈벌이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설악산의 모든 가치는 부정되고 국립공원은 유원지로 전락한다. 지난 세대의 따뜻한 손길로 설악산의 아름다움이 보존됐고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대를 이어 살아왔다. 지역민들을 품고 길러 준 설악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대박을 꿈꾸며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보존을 통해 가치를 높이고 대대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다.

도보 순례를 마치고 벌써 4번째 농성을 시작하면서 다시 농성장에서 쓸 것들을 몇 가지 챙기며 삶은 단순해지고 생각은 깊어져야 하는 날들을 생각했었다. 폭염과 소음에 시달리며 길바닥에 누워 설악산 어머니의 아픔을 떠올린 날이 얼마였던가. 천막에 기어들어 고단한 몸을 눕히면 잠결에 산양 형제 울음소리 파고들어 가슴을 찢었다. 기어 나와 둥근판을 드는 아침마다 마주치는,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나무라지 못했다. 뜨끈뜨끈한 바닥은 더 뜨거운 몸으로 견디고 줄줄 흐르는 땀으로는 목욕을 해야 했다.

견뎌서 맞이할 케이블카 취소되는 날의 함성 미리 들으며 무관심한 사람들 깨워서 나아가야 할 날들. 이제 다시는 무수히 되풀이되는 낮과 밤을 농성장이 아닌 산양 굴에서 맞이하고 싶다. 그 날을 맞으려 굳게 딛고 일어서는 날이기를 간절하게 빌 뿐이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9월 16일 환경부에 의해 부동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