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⑪ 외국인 선교사의 시선으로 본 일본교회

이상원 신부 ((예수회 일본관구·도쿄대교구 성이냐시오본당 보좌))
입력일 2019-11-05 수정일 2019-11-05 발행일 2019-11-10 제 316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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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유난히 많은 일본교회,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꿈꾼다
다국적 선교사들이 퍼뜨린 신앙 400년 흐른 지금까지 다문화 이어져
국적 무관… ‘하느님 자녀’로 공존

일본에 복음의 씨앗이 전해진 것은 우리나라보다 250여 년 빠른 1549년이었다. 한동안 일본에 타올랐던 복음의 열기는 참혹한 박해로 식었지만, 기나긴 박해기간에도 일본의 가쿠레 기리시탄(잠복 그리스도인)은 사제가 없이도 250년 동안 신앙의 불씨를 지켜왔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 출신의 일본 예수회 사제로 도쿄의 성 이냐시오본당(고지마치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는 이상원 신부의 글을 통해 일본교회의 모습을 알아본다.

■ 일본 사회의 풍조

자이니치(재일동포)라고하면 일본에 있는 한국인과 조선인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본사회에서는 이들이 귀화해서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계속 자이니치라고 부르며 외국인 취급을 하고 있다.

정작 일본인들은 미국이나 남미 등에 이주해 그 나라 국적을 취득한 일본사람을 ‘일본계미국인’이나 ‘일본계브라질인’ 등으로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 이주해서 이 나라 국적을 취득한 이들을 ‘한국계일본인’이라고 부르지 않는 걸까? 일본인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것일까? 이러한 사회풍조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여기까지는 좋지만 너희들은 그 이상 넘어오지마!’라는 의식이 있는 게 아닐까? 자이니치라는 단어를 우리도 무심코 쓰고 있지만 무서운 차별어가 될 수 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계일본인, 필리핀계일본인이라는 단어를 우리 교회라도 먼저 사용할 것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반향도 없다. 아직 때가 아닌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 타민족·다문화 속의 일본교회

일본교회는 26위 성인의 기념일(2월 6일)을 가장 성대하게 기념한다. 이들이 1597년 2월 6일 나가사키에서 순교한 뒤에도 일본 정부의 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는 계속됐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날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일본 순교 복자 205위 기념일인 9월 10일이다. 이들은 1617년부터 1632년까지 일본 각지에서 순교했다. 이들의 국적을 보면 일본을 비롯해 스페인, 멕시코, 조선 등 모두 7개 나라에 이른다.

땅이 이어져 있지 않으니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갈 수 없는 나라 일본. 그럼에도 순교 복자들의 국적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일본은 당시 개항을 해 무역교류를 하면서도 천주교 신앙은 금지했다. 이들은 일본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다가 순교한 것이다.

이는 일본 초대교회가 다국적 문화로 형성된 교회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 나라 건설에는 그 어떤 국적도 관계없고 국경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은총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연연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14일 성이냐시오성당에서 봉헌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중 이상원 신부가 성수로 성지를 축성하고 있다. 이상원 신부 제공

■ 다양성 안의 일치

필자가 사목하는 일본 예수회의 성이냐시오본당은 일본에서 제일 신자수가 많은 곳 중 하나다. 도쿄 신주쿠 인근에 있는 성당에는 주일미사에만 5000여 명의 신자가 참례하고 있다. 매주 일본어(5회, 2296명), 영어(1120명), 스페인어(173명) 미사가 있으며, 격주 또는 한 달에 한 번 베트남어(1092명), 인도네시아어(80명), 폴란드어(78명), 포르투갈어(61명) 미사가 있다.

지난 10월 6일 주일미사 참례자 수는 모두 4740명이었다. 통계를 보면 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현재 일본 가톨릭교회는 다른 교파보다도 외국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에 도쿄대교구는 문화의 차이와 마음의 일치를 경험하면서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작년부터 교구장 사목지침으로 정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다.

이제 일본교회는 타민족과 다문화 시대에 응답하려 하고 있다. 성당 안 신자들 반 이상이 외국인이었을 때, ‘우리가 세운 교회가 저들에게 점점 빼앗기고 있다’라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현재의 일본교회를 서로 함께 만들어 나가게 하는 하나의 기회이자 돌파구로 여기는 것이다.

어느덧 성당 잔디밭에서는 다양한 머리카락 색깔, 피부색, 언어의 여러 나라 어린이들이 공통으로 일본어로 말하며 함께 뛰어 놀고 있는 교회가 되었다.

하루는 어느 한 초등학생이 성당 마당에서 놀고 있는 외국 아이가 자기와 다르다고 생각했는지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 저 사람, 어느 나라 사람이야?” 이에 아빠의 대답은 “응, 저 사람은 토마스란다”였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구별하기에 앞서 먼저 서로의 인격을 가르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아빠의 모습이었다. 성이냐시오성당뿐 아니라 일본교회는 어느 의미로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몸으로 의식하고 익히며 다음 세대에 전해 나아간다면, 일본교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할 수 있겠다.

■ 일본교회의 한 실상

일본교회에는 막강한 재력과 인력을 갖추고 복음화와 선교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국제수도회가 많다. 예수회는 히로시마교구(부산교구와 자매교구)에서 음악대학과 중고등학교, 피정의 집, 노동교육센터, 본당 20개와 그 부설유치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일본 예수회의 사도직 5개 모두(대학, 중고등, 영성, 사회, 교회)를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수회 본당의 경우 한 교구 안에 속하면서 지역구 하나를 수도회가 완전히 담당하고 있다. 지구장은 인사권과 재정권을 수도회의 책임 하에 교구장의 인가를 받아 발휘하고 있다.

30년 전의 일이다. 앞으로 성소자가 부족할 터이니 우리가 먼저 교구 내 지구 시스템을 수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모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많이 늦었지만 드디어 10년 전 수도회가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이 드신 베테랑 회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였다. 그들은 60년간 자신들이 정성 들여 쌓아온 과업이 여기서 문을 닫으면 실패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때 교구장과 관구장의 리더십은 중요했다. 실패도 기념할 줄 알아야한다.

■ 38년 만에 교황을 맞이하는 일본교회

지난 2월 교황청은 예수회의 페드로 아루페 신부와 일본 기리시탄 시대 순교자 37명의 시복시성 재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천주교 교세가 0.3%밖에 되지 않는 일본교회는 이 분위기를 이끌어갈 힘이 없다. 또한 이들의 시복시성보다 당장 눈앞의 것이 더 시급하다고 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8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일본에 왔을 때의 메시지를 상기해 본다. “나는 한 사람의 순례자로서 여기 왔습니다. 일본 초대교회는 순교자의 신앙과 증언에 의해 채워졌습니다. 그들에게 빛을 맞추십시오. 그들이 여러분이 가야할 오늘의 길을 제시해 줄 것이며 내일의 사명을 열어줄 것입니다.”

11월 23일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이 태국을 걸쳐 일본에 온다. 우연일까, 두 나라 모두 교세가 작고 교회는 열악한 상황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교황의 따뜻한 손길을 기대해본다.

이상원 신부 ((예수회 일본관구·도쿄대교구 성이냐시오본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