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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통일정책과 한국교회- (3) 1989년~현재(통일정책의 혼돈 시기)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0-02-18 수정일 2020-02-19 발행일 2020-02-23 제 3183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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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핵무기보다 강하다” 민족 화해·일치 위한 연대 호소
노태우 정부, ‘北은 동반자’ 인식하는 통일안 발표
김영삼 정부는 이 정책에 ‘화해협력’ 단계 추가해
현재까지 남북 교류협력 도모하는 통일방안 계승
교회, 기도운동과 교육 등으로 평화의 저변 다져

한국 주교단이 지난해 6월 25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한반도 평화기원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평화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우리 사회에 전해 왔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1994년 김영삼 정부는 1989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한 새로운 통일 방안을 발표한다.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약칭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현재 통일 방안의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도 이 방안을 계승하고 있다. ‘통일정책과 한국교회’ 3편에서는 1989년부터 현재까지 한반도 통일정책 변화 흐름과 그에 따른 교회 목소리를 다룬다.

■ 1994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제시

한반도 통일 논의에 있어 가장 성숙한 정부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노태우 정부는 1989년 9월 11일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하며 북한을 선의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남북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도모했다.

이후 교회는 그동안 주적이라고 생각했던 북한과의 민족화해 운동을 시작한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두 달 뒤인 11월 “기도는 핵무기보다 강하다”며 남북통일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운동에 들어갔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1994년 8월 15일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하면서 보완·발전시킨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제시했다. ▲자주 ▲평화 ▲민주 등 기본원칙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통일 과정 3단계를 ‘화해협력’ 단계로 시작해 ‘남북연합’을 거쳐 최종적으로 ‘민족통일·국가통일’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남북 간 화해협력을 통해 상호 신뢰를 쌓고 평화를 정착시킨 후 통일을 추구하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방안이다.

서강대학교 김영수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 통일 방안의 기초를 마련한 좋은 출발”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전까지는 남과 북이 자신의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를 흡수하는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면, 이 방안은 통일의 속도에 있어 현실성이 반영됐다”며 “상대를 통일의 특수한 관계로 인정한 첫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그리고 현재 문재인 정부까지 김영삼 정부의 통일방안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각 시기별로 남북 관계의 온도차는 매우 컸다.

■ 북한과 통일하는 가장 멋진 방법

한국교회는 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하며 남북관계가 얼어붙자 평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사회적 입장문을 발표했다. 2006년 10월 13일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이하 민화위)와 정의평화위원회(이하 정평위)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북한이 1차 핵 실험을 감행하자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냈다. 메시지에서는 핵무기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핵 실험으로 남북 화해의 길이 막혀서는 안 되고 지속적으로 대화해야 함을 권고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2016년 2월 10일 북한에 대한 제재로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키로 했을 때에도 주교회의 민화위와 정평위는 2016년 3월 6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호소문을 통해 교회는 남과 북이 강대강 대결로 치닫자 한반도 평화 회복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또 2017년 8월 북미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며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날로 고조되자, 주교회의 민화위와 정평위는 광복절을 맞아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변화가 일어나도록 기도와 행동 안에 연대하자”고 요청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아울러 교회는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평화의 도구가 되기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했다. 주교회의 민화위가 2012년 9월 18일 ‘북한과 통일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는 “북한과 통일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유효한 방안은 민간과 경제분야 등에서 교류협력 확대를 통한 ‘사실상의 통일’ 정책 추진”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주교회의 민화위 총무 강주석 신부(의정부교구)는 “당시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 평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확고하게 전했다”며 “나아가 평화를 향한 한국교회의 의지는 전 세계 교회의 연대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 평화를 빕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한동안 급격히 평화 분위기로 전환됐다. 교회도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변화를 기대한 지 불과 6개월도 안 돼 담화문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후 2월 9~25일 개최된 평창동계올림픽 대회 전후로 평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어 두 달여 뒤인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평화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교회는 4월 한 달 동안에만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바라는 내용을 담은 메시지를 세 차례나 발표하며 평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열린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현재 남북관계는 교착국면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 간 대화와 협의가 완벽하게 조율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남북관계도 진전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는 ‘평화’를 중심으로 대북정책의 아젠다를 생성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성기영(이냐시오) 책임연구원은 “현 정부는 통일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남북 간 긴장감 완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단순히 법적인 통일이 아니라 사실상의 통일로 나아갈 기반을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운동과 교육, 본당 활동 등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저변을 다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이형전 신부는 “우리나라의 점진적인 통일의 첫 걸음은 남북 간 신뢰회복”이라며 “그래야 화해 분위기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먼저 평화의 문화가 정착돼야 북한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서 “이를 위해 우리사회가 먼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용서하며 이웃과 화해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