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북한 소년궁전은 평양교구 주교좌 성당 자리

입력일 2020-08-28 수정일 2020-08-28 발행일 1972-09-17 제 83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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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홍 주교 체포되고 성당 뺏겨
성당 헐고 63년에 소년궁전 건립
【서울】김득권(서대문 주임) 신부 증언에 의하면 지난 1일 한적 대표단이 참관했던 평양의「학생소년궁전」 바로 그 자리가 평양교구 주교좌 성당 자리란다.

6ㆍ25 당시만 해도 속칭 장댓재 언덕 위에 현대 독일식 건물로 우뚝 솟아 있던 이 주교좌 성당은 공산당에 의해「아동궁전」이라 불리우고 있었다.

1949년 5월 14일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가 보위부원들에 의해 체포되고 이어 주교좌 주임신부였던 김필현 부주교가 잡혀간 후 12월 7일에 이르러 그때까지 성당을 지키고 있던 서문석 보좌신부(현 서울 정릉 주임 서우석 신부의(兄)마저 보위부에 강제 연행됨으로써 성당은 공산당에게 뺏기고 말았었다.

8ㆍ15 해방 후 평양교구는 명동대성당보다 더 큰 성전을 짓겠다는 꿈을 안고 3개년 계획을 세워 이 주교좌성당을 신축하고 있었다. 당시 장댓재 꼭대기에는 프로테스탄트인 장대현 교회와 관후리 성당이 각각 절반 정도를 나누어 차지하고 있었는데 평양교구는 옛 관후리 성당을 헐고 장대현 교회 터를 한데 합쳐 주교좌 성당 자리로 확보했었다. 1949년까지도 성당을 계획대로 완공하지 못한 것은 건재 구입이 곤란하고 지주 등 여유 있는 신자들이 대거 월남해 버렸기 때문이라는데 성당을 빼앗겼던 1949년 말 현재 지하실인 1층만 완성하고 2층 성당은 창문 유리도 끼우지 못한 채 내부 도장공사를 못했으며 종탑도 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신학생으로 주교좌 성당에 있던 김득권 신부는 보좌신부가 잡혀 가는 광경을 직접 본 후 성당이 빼앗기자 대동강변 어느 교우집에 피신해있다가 1950년 10월 하순 UN군에 평양에 입성했을 때 장댓재로 가 보니 성당을 가리우듯 앞면에 시멘트 담이 반쯤 쌓여 있고 지하실은 인쇄소. 성당은 칸막이 하여 영사실과 교습실 등으로 사용되었으며「아동궁전」이란 이름으로 통하더라고 한다.

장대현 위의 주교좌 성당은 대동강 건너 지금의 문수리 초대소에서 바라보아도 그들 계단까지 훤히 보였다는 바로 그 자리에「학생소년궁전」이 들어선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소년궁전은 정면 10층 뒷면 7층으로 1963년에 건립되었다 하니 50년대 후반까지는「아동궁전」으로 불리우는 성당이 그대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