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태풍 단상

천강우(프란치스코) 명예기자
입력일 2020-09-23 수정일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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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연속으로 태풍이 출현해 세간이 어수선했다. 바비, 마이삭, 하이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가뜩이나 위축된 일상에 자연재해가 겹쳐 국민 모두가 우울함과 두려움에 잠겼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메리놀외방선교회 관련 파일에도 다음과 같은 태풍관련 보고서가 있다.

“9월 16일, 제 14호 태풍이 동중국해를 거쳐 다가와 천 마리 호랑이 같은 맹렬한 포효를 내며 부산을 찢어 놓았다. 우리 성당 건물은 하루 종일 덜거덕거리면서 흔들렸다. 강풍이 천지를 흔들어 놓자 전깃줄, 유리조각, 기와조각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성가대 다락에 설치된 원형 창문도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성당 바닥으로 추락했다.”

1959년 한반도 남부, 특히 부산 경남을 강타한 사라(Sarah)호 태풍 체험 기록이다. 기록자는 당시 서대신성당에서 사목하던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 출신 베니나티(Beninati) 신부. 사라호 태풍은 사망(실종자 포함) 849명, 이재민 37만 3459명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초래했다. 다음 날 9월 17일은 추석이었다.

같은 연구소 소장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파일에도 재난 기록이 보인다. 춘천교구 교구장이었던 퀸란(Quinlan) 주교가 아일랜드의 골롬반회 킬트(Kielt) 장상 신부에게 보낸 서한이다.

“금년은 교회와 국가가 공히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년(1962년)에 여름 날씨가 매우 건조하여 쌀 수확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올(1963년) 봄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감자, 보리, 밀 농사를 망쳤습니다. 또한 이어진 태풍으로 인해 홍수가 났으며 가구와 곡식에 커다란 피해를 입혔습니다.”

태풍은 바람인지라 걸음이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며, 왼쪽으로 가는 듯하다가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바람 하나에 대한 예측에서도 인간의 한계는 여지없이 드러난다. 설령 예측을 했다 하더라도 바람이 초래하는 재난을 견뎌낼 방안은 그렇게 확실한 것이 없다.

그런데 하느님은 확실한 방안을 가르쳐 주신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2:24,44)

모르는 때와 모를 장소와 측량하기 어려운 파괴력을 견디기 위해서는 깨어있을 동안 준비할 뿐이다. 애주애인(愛主愛人)이 깨어서 준비하는 삶이라고 답도 주셨다. 어느 순간 맞이한 태풍처럼, 어느 순간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 저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제가 그렇게 염치없게 살지는 않았음을 참고해 주십시오”라고 고하고 싶다.

천강우(프란치스코)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