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만년(晩年)의 깨달음

천강우(프란치스코) 명예기자
입력일 2020-10-06 수정일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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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초, 조선시대 서예가 추사 김정희 글씨 3점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된 적이 있다. 그중 하나를 보면 각 일곱 자 대련 2구로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열 네 글자다. “좋은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이고, 좋은 모임은 부모가 아들, 손자를 만나는 것이다”라고 풀이된다.

충남 예산 추사 생가에서 이 댓구가 적힌 주련(柱聯)의 관리상태를 접하고 진품 여부에 관해 약간은 의구심이 들었는데, 다행히 진품은 서울 간송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두 차례 유배생활을 거친 추사는 말년에 과천의 과지초당(瓜地草堂)에 머물렀다.

서거(1856년 10월 10일) 사흘 전에 썼다고 전해지는 봉은사(奉恩寺) 『版殿』 현판을 보고 세인들은 부귀영화와 간난신고를 나란히 겪은 이후의 초탈한 성정이 드러난다고 평가한다. 극도로 절제된 고담(枯淡)과 졸박(拙樸)의 정수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大烹』과 『高會』는 운명 두 달 전 작품이라고 하니, 십년 가까운 유배로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린 선비가 만년의 깨달음을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듯하다.

나도 한 때는 대(大) 육사교장을, 한 때는 대(大) 대학교수를, 한 때는 대(大) 미국변호사를 꿈꾸며 정신없이 내달리던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환갑과 함께 녹내장, 위암, 이명, 치아질환, 연골수술 등의 불청객도 왔다. 매일 약 넣고, 약 먹고, 수시로 주사 맞고, 임플란트에 장기 절제 하고, 여러 검진에 이골이 나다보니 어느 듯 철이 들었다.

정확하게는 이제 좀 철이 들어가고 있다. 육신의 건강과 마음의 행복은 주님께서 그저 주시는 일상의 은총이리라. 단지 내가 교회가 피하기를 경고한 칠죄종(七罪宗), 교만(驕慢), 인색(吝嗇), 음욕(淫慾), 탐욕(貪慾), 분노(忿怒), 질투(嫉妬), 나태(懶怠)에 빠져 스스로 죄를 범했기에 불청객은 찾아온 것이다.

추사는 건강과 가족의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단 열 네 글자로 기막히게 정리했다. 안타까워하는 추사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생의 끝자락에 서 보니, 흔한 반찬으로 한 그릇 먹는 것이 건강식이었다. 식구들과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었다. 그의 마무리가 옳다고 생각된다. 허망한 야욕이 주님의 선하심을 가리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주님께 도움을 청한다.

쉐마, 이스라엘!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이사야 40,6-8)

천강우(프란치스코)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