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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본 여성가족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의 쟁점

박정우 신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입력일 2021-05-03 수정일 2021-05-04 발행일 2021-05-09 제 3244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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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토대는 굳건한 남녀 사랑을 기초로 하는 혼인 유대
■ 긍정적 변화
가족의 다양성 등 강화하려 한부모 가정과 다문화 가정 등 차별받지 않도록 지원 노력
■ 쟁점
혼인·혈연·입양으로 구성된 현재 가족 정의마저 바꾸려 해 
비혼 동거와 사실혼 포함 시도
■ 우려
남녀 일치와 생명 전달이 가정의 소명 이루는 근거 
혼인의 제도적 안정성 중요
차별 없는 정부 지원 위해 가족 개념까지 바꿔야 하나

“2025 세상 모든 가족 함께.” 최근 여성가족부는 이 같은 비전을 밝히며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정부가 추진할 가족 정책의 근간이 되는 계획으로, 여성가족부는 이 계획을 통해 “모든 가족, 모든 가족구성원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1·2인 가구의 비중 증가와 비혼 동거·출산 등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해 차별 없이 제도적 지원을 펼친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기존의 가족 개념을 바꿔야만 차별 없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내용 등은 기본적인 가족 제도의 해체와 가정의 고유한 가치를 약화시킬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들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계획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관련 교회 가르침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 신부에게 이를 들어본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제도적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긍정적 방향이다. 그러나 모든 유형의 가족 형태가 대등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가족 개념을 바꾸어야만 차별 없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지난 4월 27일 여성가족부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을 발표하면서 “다양성, 보편성, 성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점을 설정하고, “가족 다양성 인정”과 “평등하게 돌보는 사회”를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가 광범위한 가족 정책을 제시하면서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법적인 지원을 받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촘촘히 살피겠다는 뜻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이 계획 안에는 가족 형태의 급격한 변화의 현실을 수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사회가 오랜 기간 지켜 온 가족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을 흔들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계획은 현재 가족의 정의를 “혼인, 혈연, 입양으로 구성된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규정한 민법을 차별이라고 바라보면서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여 ‘비혼 동거’와 ‘사실혼’도 법적 가족에 포함하겠다고 한다. 다수의 국민은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고, 친밀과 돌봄이 행해지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가족으로 보는 것에 동의한다고 주장하며, 혼인과 혈연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가족 형태, 미혼모 등 한부모 가정, 위탁가족(학대아동 쉼터), 동거(비혼, 노년 동거), 사실혼 등을 법적인 가족 형태로 받아들여 그들이 정책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제도적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긍정적 방향이다. 그러나 모든 유형의 가족 형태가 대등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가족 개념을 바꾸어야만 차별 없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가톨릭교회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이런 가족 개념 변경이 부부의 사랑과 일치, 자녀 출산과 양육을 중심으로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본래의 고유한 ‘가정’의 특별한 위치와 소명의 가치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동거’와 ‘사실혼’에는 공적인 서약과 법적 인정으로 맺어지는 ‘혼인’과 같은 제도적 안정성이 없고, 종교적으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충실한 사랑을 표상하는 혼인이 지닌 ‘성사성’과 신성함이 빠져 있으며,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위한 안정된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 또한 동성혼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동성 간의 동거’도 남녀의 일치와 생명 전달이라는 ‘가정’의 소명과는 거리가 멀고, 동성애 행위에는 남녀의 상호보완성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물론 실질적인 몸의 일치도 불가능하다. 교회는 이런 의미에서 동성애를 창조질서를 벗어난 ‘객관적 무질서’라고 부른다.

교회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하느님께서 ‘혼인’과 ‘가정’이라는 제도를 직접 의도하셨고, 이를 통해 부부는 둘이 하나가 되는 친교를 이루고,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인격적 완성과 구원의 길을 걷는다고 가르친다. 부부가 헌신하며 생명의 환경을 만들어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 안에는 인내와 헌신이 요구되고 자기희생이 따르기도 하지만, 인격 간의 소통과 충만한 사랑을 통한 성장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각각의 유형마다 알맞은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2019년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전체 일반 가구의 30.2%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의 비율 29.8%를 넘어섰다. 젊은이들의 혼인 나이가 늦어지거나 개인의 삶을 즐기려고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혼으로 홀로된 이들, 사별로 인한 독거노인, 취업이나 학업을 위해 본 가정을 떠나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탓이다. 그렇다고 이런 1인 가구를 부부와 미혼자녀들로 구성된 전통적인 가정과 동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봉헌된 독신을 제외하고 1인 가구는 그 자체로 권장할 사안으로 보기 어렵고, 특히 청년 1인 가구는 생애주기에서 일시적으로 지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1인 가구 다수가 당장 겪는 문제들, 즉 고립감과 주거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제공하되, 이들이 다시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로서의 가정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의 기쁨」에서 혼자 살거나 혼인 대신 동거를 선택하는 이들 중에는 “지나친 개인주의”로 인해 “가정의 유대를 왜곡시켜” 고립된 개체로 살아가거나(33항), 가정의 소명보다 개인의 선택의 자유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에게 혼인과 가정이 “평생을 짊어지고 가는 짐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완성의 역동적 길”(37항)이라는 가치를 알리고 “젊은이들이 열정과 용기를 내어 혼인이라는 도전을 받아들이도록 초대”(40항)하자고 권고한다.

여성가족부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는 그 밖에도 다양한 가족 형태에 맞는 사회적 돌봄체계를 강화하고 남녀가 평등하게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 환경 조성을 위한 다양한 계획들이 있다. 미혼모의 자택 출산의 경우 출산 신고 관련 절차 등에 관한 법적 지원, 미혼부의 경우 출생신고를 쉽게 함으로써 아동의 출생등록권 보장, 그리고 출생신고에 누락되는 아이가 없도록 의료기관 출생통보제 도입 정책 제안도 긍정적인 사안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의 고유한 특성과 요구를 살피고 차별 없이 돌보려는 노력을 평가하지만, 가족 개념의 변화 시도는 혼인과 혈연, 입양을 바탕으로 형성된 가족의 유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인식하고, 부부의 충실한 사랑과 자녀 출산 및 양육이라는 가정의 고유한 사회적 책임과 가치와 소명을 더욱 강조하고 지켜나가는 정책을 펴길 바란다.

박정우 신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