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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장교의 병영일기]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권영훈 중령

권영훈(레지나) 중령 국군수도병원 내과간호과장
입력일 2021-07-27 수정일 2021-07-27 발행일 2021-08-01 제 325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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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가을, 국군강릉병원에서 근무 중에 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얼른 와야겠다.” 단호한 큰오빠의 목소리에 불안해진 저는 ‘주님, 도와주세요’라고 짧은 화살기도를 드리며 그 길로 서울 성바오로병원으로 향했습니다. 1년 전 중앙선을 넘은 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투병하시던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강릉에서 서울은 너무나 멀었고, 가는 내내 제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병원에 막 도착해서 이미 의식이 없으신 아버지의 귀에 제가 도착했다고 말씀드리자 그때까지 힘겹게 견디시던 거친 숨을 조용히 거두신 제 아버지, 권태구 아우구스티노. 군인이란 핑계로 너무나 오랜만에, 이렇게 늦게야 온 것이 죄송해서 저는 그저 아버지의 차가운 발만 만지작거리며 소리도 못 내고 울었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의 오랜 친구분이 내미신 한 통의 편지에는 아버지의 정갈한 글씨체로 “가톨릭의과대학교에 내 몸과 장기를 기증해 달라, 아이들이 반대하면 설득해 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유언장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반대할지 모를 저희 남매를 설득해 달라시다니, 역시 제 아버지다우셨습니다. 하지만 엄마와도 의논 없이 하신 아버지의 결정이 서운했던 저희 4남매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엄마와 아버지 병상을 끝까지 지킨 작은오빠는 반대도 했지만, 나이팅게일 기장(紀章)을 수상한 간호사로서 마지막까지 아버지와 시신 기증을 의논하셨던 이모의 설명과 ‘아빠가 원하시는 걸 하자’는 막내의 말에 결국 아버지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관련 절차는 든든한 오빠들이 맡고 아버지의 특별 유산인 꽃동네 후원은 제 몫이 돼 아버지로부터 지금까지 30년 넘는 후원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발인 날, 장례미사가 끝나자 아버지를 모신 앰뷸런스는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갔고, 1년이 지나 돌아오신 아버지는 가톨릭대 의대 시신 기증자를 위한 용인 천주교 공원묘원 참사랑 묘역에 안장되셨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삶과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환자의 죽음에서 느낀 슬픔과는 또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일상에 복귀해도 텅 빈 마음이던 저는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 기도와 묵상이 주는 위로의 힘, 어떠한 시련도 결국엔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죽음이 완전한 끝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런 생각에는 제 곁의 좋은 동료들도 큰 힘이 됐습니다.

지금도 임상에서 어려운 순간을 종종 마주하지만, 솔로몬의 지혜와 마음 낮춘 기도는 삶 앞에서 더없는 겸손과 제가 만나는 환자와 동료의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가끔 마음 서늘할 때는 가만히 류시화 시인의 시를 읊어 봅니다.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권영훈(레지나) 중령 국군수도병원 내과간호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