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암환자 위한 휴식공간, 마뗄쉼터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1-08-10 수정일 2021-08-11 발행일 2021-08-15 제 325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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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품에 안긴 듯… 암환자와 가족 모두를 돌보는 쉼터
종교와 경제력 상관없이 4박5일 무료로 이용 가능
강화 마니산 자연경관 아래 기도하며 쉴 수 있는 공간
면담과 피정도 할 수 있어

강화 마니산 자락에 마련된 마뗄쉼터. 암환자와 그 보호자라면 종교와 경제력 상관없이 누구나 4박5일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도. 다리들이 이어져 섬이란 말이 무색하다고들 하지만, 바다 위로 세워진 다리를 건너는 순간 바다와 풀 냄새가 가득하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던 마니산 자락에 들어서면 자연의 품에 푹 안긴 듯한 기분마저 든다. 주변의 자연만으로도 ‘힐링’ 되는 것만 같은 강화 마니산 자락에 암환자와 그 가족을 위해 마련된 무료 휴식공간이 있다. 바로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마뗄암재단이 운영하는 마뗄쉼터(인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로731번길 15)다.

■ 암으로 병든 영혼 치유하는 공간

지난해 말 발표된 2018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의 수는 201만 명이다. 국민 25명당 1명이 암유병자라는 것이다. 그만큼 암환자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최근에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암도 정도에 따라 치료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암은 사망원인 1위의 무서운 병이다. 암이 일상처럼 느껴진다 해서 암환자들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회복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조차도 마음속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긴 투병에 암환자뿐 아니라 돌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피폐해진다.

마뗄암재단 사무국장 이영숙 수녀는 병원사목을 통해 수많은 암환자들을 만나면서 암환자들과 가족들이 마음에 얼마나 큰 아픔을 지니고 있는지 지켜봐 왔다. 특히 암으로 죽음을 앞둔 이들은 가족과의 관계 안에서 곪았던 상처가 더욱 커지곤 했고, 죽기 전에 정을 떼야 한다며 가족들에게 냉랭하게 대하는 이도 있었다. 암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암 치료 전과 달라진 상황에 우울감에 빠지는 일도 많았고, 치료비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자책하기도 한다. 심지어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며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암환자와 가족들이 하느님 안에 쉬면서 영혼의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마련한 곳이 마뗄쉼터다. 2019년 10월 축복식을 한 마뗄쉼터는 13개의 개인실과 3개의 가족실, 기도실과 경당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숙소동에 있는 기도실이 눈길을 끈다. 기도실은 방음시공이 돼 있어 외부의 소음에 기도를 방해받지 않을 수 있고, 혹은 밤새 소리 내어 기도해도 외부에 기도소리가 들릴 걱정이 없다. 기도실에 자리한 370년 전 영국에서 제작된 예수상을 비롯해 쉼터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성물들은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치유 안에 머물도록 돕는다. 또 환자들의 건강을 생각해 쉼터의 모든 인테리어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

마뗄쉼터 가족실. 마뗄쉼터는 암환자와 그 가족들이 하느님 안에서 쉬면서 영혼의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코로나19로 이용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이용자의 많은 수가 치유를 경험했다. 6개월 넘게 별거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던 부부가 암 진단 후 쉼터에서의 휴식을 계기로 화해하기도 하고, 서로 냉랭했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이영숙 수녀는 “많은 분들이 바쁘게 살아오느라 자기 몸을 돌보지 못하다가 암 투병을 하게 된다”며 “내 몸과 영혼을 돌아보고 가족과 나 자신과의 화해를 위해서는 집이 아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암환자라면 누구나

마뗄쉼터는 암환자와 그 보호자라면 누구나 4박5일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종교 여부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관계없다. 원하는 이들에게는 강의나 면담, 피정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이 또한 무료다.

마뗄쉼터 103위 재정위원 이름이 새겨진 공간. 마뗄쉼터는 103위 재정위원이 각각 103위 중 한 성인의 이름으로 봉헌한 금액을 쉼터 이용비로 사용하고 있다.

마뗄암재단이 2005년 처음 발을 내디딘 것은 가난한 암환자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운 암환자들을 수녀회 차원에서 도와왔지만, 수녀회의 재정으로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수녀회 공동 창설자 마뗄 윤병현 수녀(1912-2003)의 이름으로 재단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재단은 그동안 복지 사각지대의 암환자를 지원해왔고, 마뗄쉼터를 무료 쉼터로 준비했다. 재단에게 암 투병으로 상처 입은 영혼을 지닌 이는 모두 이 시대의 ‘가난한 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뗄쉼터는 설립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두 후원자들의 정성으로 이뤄지고 있다. 마뗄쉼터만의 독특한 후원방식도 있다. 마뗄쉼터는 103위 한국순교성인의 전구와 도움으로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로 하고 103위 재정위원을 두고 있다. 103위 재정위원이 각각 103위 중 한 성인의 이름으로 봉헌한 금액을 암환자들의 쉼터 이용비로 사용하고 있다. 103위 재정위원이 후원은 쉼터 이용비에만 국한된다. 쉼터의 유지관리나 새 시설 확충을 위해서는 별도의 후원이 필요하다.

마뗄암재단은 암환자들이 쉬어가는 공간 마뗄쉼터에 그치지 않고, 마뗄쉼터 인근에 호스피스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임종을 앞둔 암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암환자와 가족들이 편안하고 넉넉한 공간에서 화해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이 시설 역시 후원금을 통해 암환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 마뗄암재단 사무국장 이영숙 수녀

“마지막 순간에 ‘화해’할 수 있는 공간 필요”

임종 지켜준 사람만 2000여 명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암환자 위한 기도 멈출 수 없어

“선종 돕는 호스피스시설 절실”

이영숙 수녀는 “암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임종’을 ‘선종’으로 만드는 일이 주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는 일임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우도(예수님 오른쪽에 매달린 강도)가 그런 것처럼 우리도 마무리를 잘 하면 성공이잖아요. 한 사람이라도 영혼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기도해주러 다녀요.”

35년. 마뗄암재단 사무국장 이영숙 수녀가 암환자들 곁에서 활동한 시간이다. 그저 곁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임종도 지켜줬다. 이 수녀가 임종 직전 대세를 준 사람만도 700여 명, 기도하며 임종을 지켜준 사람은 2000명이 넘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임종을 지켰는지, 성모자애병원(현 인천성모병원)에서는 ‘저승사자 수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이었지만 죽음 앞에 선 암환자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이 수녀도 33세에 4차례의 큰 수술을 받으면서 암을 이겨냈다. 이 수녀는 자신의 암 투병과 암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임종(臨終)을 선종(善終)으로 만드는 일이 예수님의 구속 사업에 동참하는 일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병원에서 임종하면 ‘객사’라면서 가족들이 임종 직전에 다들 집으로 모셔갔어요. 그럼 집에서 환자들이 가족들과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 시간이 있었죠.”

수많은 암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본 이 수녀는 ‘화해’를 강조했다. 마뗄쉼터도 화해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이 수녀는 나아가 특별히 임종을 앞둔 암환자들이 가족과 화해할 수 있는 호스피스시설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 수녀가 구상하는 호스피스시설은 단순히 통증완화가 아니라 가족이 편안하게 함께 모여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임종의 방’도 포함돼 있다. 이 수녀는 “이건 환자 한 명의 일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일”이라며 “최고로 아름다운 방을 만들어서 천국 같은 방에서 천국 간다는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과, 하느님과 화해를 통해 사랑과 정, 감사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 영혼에 무지개가 생겨요. 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해주는 게 호스피스에요.”

※문의 032-937-7530 마뗄쉼터

※후원: 농협 355-0064-3508-93(재단법인 마뗄암재단)

※후원 문의: 010-3355-1946, 02-723-4706 (마뗄암재단)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