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600) 보좌와 주임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9-07 수정일 2021-09-09 발행일 2021-09-12 제 326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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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전주 시내의 어느 본당에 어떤 기금을 마련하러 ‘미숫가루’를 팔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본당의 단체에 특강을 해주러 갔다가, 본의 아니게 미숫가루를 팔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특강을 요청했던 교우분으로부터 본당 주임 신부님도 기뻐하신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은 편안했지만, 처음 뵙는 신부님의 본당에 뭔가를 판매하러 간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전 신자 대상’ 등을 하라면 자신감 있게 하겠지만, 물건을 판매하러 가서 교우분들에게 ‘도와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라 그 본당 교우분들에게 마음의 불편함을 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웬만해서는 긴장을 하지 않지만, 그 본당을 찾아가기 전날에는 잠을 잘 자지 못했었습니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아침 기도를 마친 후, 봉사자분이랑 7시에 출발해서 그 본당을 찾아갔습니다. 햇살이 참 좋았고, 푸르른 하늘빛이 너무나도 깨끗한 하늘이었지만 내 마음만 뿌연 안개 길을 가는 듯하였습니다. 서둘러 출발했더니 조금 일찍 그 본당에 도착했고, 시간이 약간 남아 근처 가게에서 간단하게 뭔가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본당으로 돌아와 보니 우리를 맞이하는 담당 형제님이 기다리고 계셨고, 우리가 가지고 온 미숫가루를 잘 진열해 주신 후, 제의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9시 미사를 보좌 신부님이 집전하신다는 말은 들었고, 제의방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니 고백소에 계신 것 같았습니다. 미사 시작 10분 전! 젊은 신부님이 제의방에 들어오시더니 나를 보자 먼저 인사를 하였습니다.

“아, 신부님. 안녕하세요. 오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세상에! 선한 얼굴에 자상한 미소의 신부님 모습을 보니 긴장감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부님과 나는 제의를 입으며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묻는데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신부님 같았습니다.

이윽고 미사 시간이 되었고, 본당 교우분들에게 내가 왜 ‘미숫가루를 팔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휴…’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데 신부님은 나의 사연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듣고 있었습니다. 나 혼자 생각해 봅니다. ‘보좌 신부님이 저 정도면 주임 신부님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그러다가 영성체 때 성체 분배를 하러 본당 주임 신부님이 제의방에서 나오셨는데, 예상했던 대로 인자한 표정의 신부님이셨습니다.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어제, 오늘, 아니 좀 전까지 괜히 긴장을 했네.’ 그렇습니다. 그분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미숫가루를 팔러 온 손님 신부인 나를 진심으로 환대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미사 후 본당 마당에서 미숫가루를 파는데, 신부님들이 먼저 교우분들 앞에서 친절한 호객(?) 행위를 해주셔서 가져간 미숫가루를 다 팔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고맙던지. 두 분 신부님은 미숫가루를 팔고, 돌아가는 내게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도 해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손님인 나를 동료 사제로 맞이하던 신부님들의 ‘친절’과 ‘환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제의방에서 보좌 신부님의 첫 인상을 보면서, 함께 살고 있는 주임 신부님이 어떤 분인지 예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임 신부님을 뵈면서, 그 본당에서 보좌 신부님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에 그려졌습니다.

차 안에서 혼자 골몰히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고 함께 간 봉사자분은 긴장한 듯한 눈치였습니다. ‘앗, 이러면 안 되지. 이럴 땐 그냥 미소라도 지어 봐야지!’ 평소 친절하지 못한 나는 그 신부님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차 안에서 계속 웃는 척만 했습니다. 헤헤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