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기적 / 이승훈 기자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1-09-14 수정일 2021-09-14 발행일 2021-09-19 제 326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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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이 있다. 우연으로 말미암은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말할 때 자주 쓰는 단어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무덤과 유해 발견은 그야말로 세렌디피티였다.

빈 무덤이라고 생각했던 무덤을 팠더니 유해와 유물이, 그것도 우리나라 첫 순교자라고 불리는 복자들의 유해가 발견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얽힌 우연은 또 있다. 유해가 발견된 바우배기는 윤지충의 묘소를 찾아 헤매던 김진소 신부가 1995년 10월 순교자의 무덤이라고 추정하고 발굴을 계획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우연히도 김 신부가 20여 년간 수집한 교회사 자료를 잃는 사건이 터졌고, 그 와중에 바우배기 발굴은 잊혀지고 말았다.

그때는 우연히 못 찾았고 이번엔 우연히 찾았다. 묘한 우연이다. 세렌디피티는 역설적으로 필연이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방탄소년단 ‘Serendipity’(세렌디피티)의 가사처럼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냐”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신앙인의 입장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뜻이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 것이다.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담화를 통해 “코로나 사태의 대재앙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시대에 최초의 순교자들의 유해를 만나게 해주신 하느님의 뜻은 순교자들이 지니셨던 영성을 우리도 본받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영성을 따르지 않으면 이번 유해발견은 그저 우연일 뿐이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기적은 우리에게 달렸다.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