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께 드립니다 / 송경애

송경애(바르바라) 시인
입력일 2021-11-02 수정일 2021-11-02 발행일 2021-11-07 제 326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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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 안녕하세요? 지팡이를 두고 가셨으니 허리가 주욱 펴지셨겠지요? 주님의 나라에서 웃음을 달고 지내시려니 합니다. 아주 가끔은 저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곁에 계실 때 하나 뿐인 딸자식 시집보내 놓고 텅 빈 집에서 어떻게 지내셨을까? 제 금쪽같은 아이 둘 제 짝들 찾아 떠난 후에야 어머니의 그 허전하셨을 시간을 겨우 생각했습니다. 저는 왜 하필 6·25전쟁 중에 태어나 어머니를 그리도 힘들게 했을까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길거리에 죽은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는 죽음의 터널을 갓난 저를 품고 홀로 용케 지나오신 어머니.

어느 날 서류를 챙기셔야 한다고 학교로 출근 하셨다는 아버지는 그 말씀을 마지막으로 오늘까지도 무소식입니다. 통일부에 이산가족만남 신청을 하고 아버지의 소식을 하루하루 기다린 날보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버지 꿈을 꾸고 싶은 밤이 더 많았던 어머니. ‘집 떠난 사람이 꿈에 부엌으로 들어오면 집으로 돌아온다’라는 옛 어른들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사셨던 어머니. 철이 들고서야 아버지의 꿈을 꾸는 일보다 어머니를 살아남게 한 힘은 신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늦게야 떠난 피난길에 임시로 눌러 앉게 되었다는 원주 근처의 어느 피난민 수용소. 그곳에서 설사병에 걸렸던 제가 효도 한 번 확실하게 했다던 이야기는 백번을 들어도 싫지 않습니다. 귀한 약을 구해 준 옆방의 아주머니가 고마워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아주머니를 따라 가셨다는 성당. 당이 많은 이북에 사셨던 어머니는 남한에도 당이 많은가 보다 하셨다지요. 회의를 하려니 하고 따라 갔었다는 성당에서는 이북처럼 회의를 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었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생각만 해도 웃지 않을 수 없던 일은 어머니가 영세를 받으시고 첫 성체를 모시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공심제가 있었던 그 옛날 침은 삼켜도 된다는 설명을 대모님도 그 누구도 해 주지 않아서 긴긴 미사 내내 입에 고이는 침을 삼키지 않으려고 손수건에 침을 계속 뱉으시던 고역을 치룬 이야기는 요즘 유행어로 ‘웃픕’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쓰다가 주변의 신자들을 훔쳐보니 모두들 멀쩡하게 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언제나 그들처럼 신앙이 깊어지려나 하셨다지요? 참으로 고지식했던 어머니의 공심제 이야기는 지금도 저를 미소짓게 합니다.

또 있습니다. 저를 기르느라 어머니 당신 자신에게는 아끼고 아끼셨던 어머니의 젊은 날, 그 찬란한 슬픈 날이 있습니다. 늘 화장을 안 하셨던 어머니, 어린 저는 남들 다 바르는 립스틱을 왜 안 바르냐고 물었었지요. 어머니 답은 6·25전쟁 때 저를 업고 피난 나오시느라 립스틱을 못 갖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저 하나 잘 기르려고 입술연지 하나 바르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하시고 아끼셨던 그 마음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으로 저는 6.25전쟁에서 살아남았고 제게 심어 주신 신앙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잘 살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실 어머니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이 편지를 늘 들고 다니다가 문득 어머니 목소리가 그리운 날에는 정족리 부활성당에 가려고 합니다. 햇살이 잘 드는 어머니 영정 앞에서 이 편지를 노래하듯 읽겠습니다. 어머니가 팔베개를 해 주시고 어린 제게 현제명의 ‘봄 처녀’를 가르쳐 주셨듯이 노래로 이 편지를 올리겠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송경애(바르바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