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611) 간절함의 기적

입력일 2021-12-01 수정일 2021-12-01 발행일 2021-12-05 제 3272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며칠 전 나에게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신부님, 대모님이 너무 아프셔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많이 심각하신 것 같아요.”

‘아, 그분의 대모님이라!’ 대모님이라는 분은 내가 예전에 새남터본당 주임 신부로 있을 때 종종 순례를 오셔서 알게 되었는데 연세는 70대 중반이며, 키는 작고, 정말 깡마른 분으로 기력은 없어 보이지만, 신앙의 힘은 올곧은 어르신입니다. 그 어르신은 성지에 와서 순례를 할 때마다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어르신은 내가 성지에서 나무를 심고, 정원을 손보고, 꽃을 가꿀 때면 ‘하느님은 농부셔요, 그래서 우리 신부님도 농부 일을 하시네요’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음료수를 내게 건네주고는 후다닥 사라지곤 하셨습니다.

가끔은 몇몇 대녀분들과 함께 성지에 오셔서 기도하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본당을 떠날 즈음, 그분 대녀의 전화번호를 알아 놓아, 아주 가끔 그 어르신의 근황을 대녀에게 묻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대녀에게 받은 문자가 ‘대모님이 위중하다’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대녀에게 ‘기도하겠다’는 답장을 드렸는데, 1시간 후에 대녀로부터 ‘대모님 선종하셨어요. 기도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순간, ‘아, 그 어르신이 하느님 품으로 가셨구나. 에휴...’ 언제나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씀하신 분이라, 그 어르신의 선종 소식에 조금은 슬펐습니다. 그러다 대녀로부터 또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죄송해요, 신부님. 지금 병원에 와서 보니 모든 신체기능은 정지가 된 상태이고, 심장만 아주 미약하게 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병원에서도 오늘, 내일 한답니다.’

그래서 대녀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상황을 물었더니, 아침에 갑자기 쓰러지셨고, 119를 불렀을 때에는 모든 기능이 정지되어 선종한 줄 알았는데, 119를 타고 가는 동안 심장 박동이 매우 희미하게 뛰었다는 것입니다. 그날 오후와 저녁에도 그 대녀에게 상황을 알려달라는 문자를 드렸더니 대모님의 가족들도 다 왔고, 모든 임종 준비를 갖추었는데 대모님은 계속 힘겨운 – 희미한 숨을 쉬고 있었답니다. 모든 기능이 다 멈추었고, 기력이 하나 없어 심장 박동 한 번, 숨 한 번 쉬기가 어려웠던 어르신은 뭔가를 기다리며, 마지막 숨의 끈을 놓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나 역시, 마음 같아서는 어르신이 입원한 병원에 가 보고는 싶었지만 코로나19뿐 아니라 수도원 공사 관계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기에 쉽게 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다음 날 오전, 대녀와 그 어르신의 가족들은 코로나19 상황으로 병원 출입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르신에게 병자성사를 받게 하려고 신부님을 찾아 수소문했었답니다. 그래서 가까스로 어르신을 조금은 알고 있던 신부님을 찾아 급히 모실 수 있었답니다. 중환자 병실에서 아주 미미한 심장 박동만 있던 그 어르신은 극적으로 병자성사를 받았고, 기도문의 마지막에 신부님의 ‘아멘’ 소리를 듣자 마지막 숨을 쉰 후 하느님 품으로 갔답니다. ‘아… 얼마나 병자 성사를 받고 싶었으면!’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머리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 즉 거의 멈추어버린 심장 박동을 유지한 채 신부님을 기다렸던 어르신! 보통 사람은 불가능하지만 그 어르신은 가능했으리라 혼자 추측해 봅니다.

‘평소의 삶’, ‘평소의 신앙’이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탁했기에 마지막 순간 병자성사의 은총을 받고 하느님께 가고 싶었던 간절한 그 마음이, 결국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문득 우리의 삶도 평소 간절함을 간직하며 살아간다면, 그 간절함이 마침내 불가능도 가능하게 해 주는 기적의 힘을 가져올 수 있겠다는 큰 깨달음을 배우게 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