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612) ‘집 밥 식당’과 어머니 마음

입력일 2021-12-08 수정일 2021-12-08 발행일 2021-12-12 제 327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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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장터순교성지에 ‘수도원과 순례자 쉼터’를 짓기 위해서 건축비 마련의 일환으로 인근 본당 주임 신부님 도움으로 굴비를 팔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굴비를 원가로 넘겨주셔서 굴비 판매 수입에 큰 도움을 주신 그 본당의 사목회장님을 만나러 굴비 가공 공장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도 물건을 납품하시느라 정신이 없던 사목회장님을 만나 여러 의견을 나누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에 사목회장님은 근처에 ‘집 밥’ 같은 식당이 있으니, 가서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식당에 갔는데, 그곳은 아침과 점심까지만 영업을 하였고, 외국인 노동자분을 포함해서 여러 분들이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식탁에 앉은 후 벽에 적힌 메뉴를 보는데 ‘오늘의 백반’이 있었고, 가격은 8000원이었습니다. 주문을 하자마자 이내 곧 음식이 나왔는데, 놀랍게도 그 가격에 아주 풍성한 음식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어머님이 해 주시는 손맛 나는 반찬과 그날의 국이 나왔고, 밥이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밥을 더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식당에서 사목회장님과 맛있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1인 분에 몇 만 원짜리 ‘OO정식’보다 더 맛있는 식사를 기쁘게 한 기념으로 나는 그날 이후 그 식당을 자주 이용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 후로 성지에서 일하다가 ‘집 밥’이 그리울 때면, 혹은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와 나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해 주고 싶다고 하면, 언제나 그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분들은 그 식당에 들어가 식삿값이 ‘8,000원’인 것을 보면, ‘더 맛있는 것, 더 좋은 것’을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차려진 음식을 보자 ‘신부님 잘 왔네요’ 하였고, 식당을 나올 때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원 건축 현장 소장님이 그 식당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날따라 속이 안 좋아 점심을 못 먹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 내내, 성지 사무실 컨테이너에 누워 쉬었습니다. 또한 순례자 미사를 드린 후, 조금 일찍 공소로 가서 쉬었습니다. 정말 잠이 보약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개운한 마음으로 9시 즈음 성지로 출근을 했는데, 글쎄 공사 차량들 사이로 어떤 차가 있었고,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 차의 문도 열리더니 어떤 여자 분이 작은 가방을 가지고 내리셨습니다. 누군가 봤더니, 그 식당의 여자 사장님이었습니다.

“어머. 신부님 이제 오셨네. 제가 신부님 연락처도 모르고 해서, 조금 더 기다리다 그냥 가려고 했는데.”

“아니 여기를 어떻게 알고?”

“여기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에요. 그리고 신부님 속이 안 좋다고 해서 죽을 가져왔어요. 제가 어릴 때 우리 어머니가 속이 안 좋으면 새우로 죽을 끓여 주셨는데, 신부님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세상에.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어제 점심 때 소장님이 오셔서, 신부님이 속이 안 좋아서 같이 못 왔다고 그러셨어요. 암튼 저는 식당이 바빠 이만 가볼게요. 그릇은 소장님 편으로 보내 주세요.”

세상에 이런 일이! 성지 사무실에서 작은 가방을 열어봤더니, 세끼 정도 먹을 양의 새우 죽이랑 반찬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최근 공사 때문에 그 식당을 몇 차례 이용했고, 가서는 조용히 식사를 한 것뿐인데 이렇게 마음을 써 주시다니. 그 식당에 부처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을 정도로 열심한 불자(佛子)이신 여자 사장님이 어찌 나 같은 신부에게 이런 감동을! 순간 그 식당을 알게 해주신 하느님 섭리에 감사를 드리고, 그분의 마음속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집 밥 식당에서 느끼는 ‘손 맛’! 결국은 사랑과 정성이 몸에 베인 어머니 마음에서 나오는 ‘영적인 기운’이라 생각해 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