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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일기] 믿음과 실천 / 문상준 중령(진)

입력일 2021-12-15 수정일 2021-12-15 발행일 2021-12-19 제 3274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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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군기가 빠졌네”라고 말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군기라는 단어는 이처럼 군인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두루 쓰이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군기는 주로 전투복을 바르게 착용하지 않았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거나, 다른 사람에게 결례를 하는 등 당사자의 외적 군기가 이완돼 있음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외적 군기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내적’ 군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으로 군기를 확립하려는 의지 없이 외적 군기만 바르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올바른 군기를 확립한 것은 아니므로, 내적 군기는 외적 군기만큼 중요합니다.

지금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으로 대체됐는데,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배웠던 ‘군인복무규율’에는 군기를 이렇게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군기는 군대의 기율이며 생명과 같다. 군기를 세우는 목적은 지휘 체계를 확립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일정한 방침에 일률적으로 따르게 하여 전투력을 보존, 발휘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군대는 항상 엄정한 군기를 세워야 한다. 군기를 세우는 으뜸은 법규와 명령에 대한 자발적인 준수와 복종이다. 따라서 군인은 정성을 다하여 상관에게 복종하고 법규와 명령을 지키는 습성을 길러야 한다.” 군기의 외적 측면뿐 아니라 내적 측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신앙도 군기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에는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라고 신앙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지난 두 달을 돌아보면서 소속 부대를 옮기고 나서 달라진 생활 패턴을 핑계로 몇 주간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못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늦게라도 성당에 가야겠다는 의지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차량 정체로 결국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미사 후 신부님을 만나 “제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라는 우문(愚問)을 드렸는데 신부님께서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고 계신다“면서 “그러니 성당에 못 오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현답(賢答)을 주셨습니다.

그 순간 내가 그동안 외적인 신앙생활에 치중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군기를 세우는 으뜸이 법규와 명령에 대한 자발적인 준수와 복종인 것처럼, 믿음을 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것 역시 행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 외적 측면에서 충실하게 뿐 아니라 내실(內實) 있게 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