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상)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01-12 수정일 2022-01-12 발행일 2022-01-16 제 327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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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 섬기자

1965년 성빈센트병원 착공식 모습. 수녀회는 1965년 한국에 진출해 수녀원보다 병원을 먼저 지었다.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제공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총원장 문화연 마리아 가브리엘라 수녀)는 1965년 1월 8일 세 명의 선교사 수녀들이 입국하면서 한국에서의 역사가 시작됐다. 한국 진출 2년여 만인 1967년 6월 3일 현대식 의료시설과 자선진료소를 갖춘 성빈센트병원을 개원해 지역 의료환경 개선과 복음화에 기여하고 있다. 수녀회는 수녀원 건물보다 병원을 먼저 지었다.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빈센트 성인의 영성으로 설립된 수도 단체 가운데 하나다. 빈센트 성인은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을 섬긴다’는 정신으로 17세기 프랑스에서 ‘사랑의 딸회’를 설립해 활동 수도회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세기 초 빈센트 영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독일 파더본교구장 프리드리히 클레멘스 주교(재임 1825~1841)는 당시 파더본 국립병원 환자들을 돌볼 수녀들을 양성하고자 수도생활을 갈망하던 간호사들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자비의 수녀회’에 보냈다. 양성을 마친 파더본의 첫 수녀들이 스트라스부르의 두 수녀와 함께 독일에 돌아와 1841년 3월 25일, 파더본 국립병원을 모원으로 한 ‘파더본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를 시작하게 됐다.

창립자 프리드리히 클레멘스 주교는 수도회가 설립된 그해에 선종했지만, 창립자의 행적과 편지를 통해 드러나는 간절한 마음과 노력은 수녀회가 파더본교구에서 병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급속히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함께 선교정신에 고취돼 있던 수녀회는 6·25전쟁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실정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당시 수원교구장 윤공희(빅토리노) 주교의 초청으로 신설 교구이면서 의료 환경이 열악했던 수원교구로 수녀들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1965년 한국에 진출한 수녀회는 1974년 성빈센트병원 뒤편에 수녀원 본원을 마련했다. 이후 점차 사도직 확장으로 분원 수가 늘어나는 등 수도회가 성장함에 따라 1990년 한국 공동체는 독일 파더본으로부터 독립돼 교구 설립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로 거듭났다.

독립 이후 수도회 뿌리인 파더본 공동체와 연계를 지속하고 있으며, 스트라스부르 자비의 수녀회에서 생겨나 유럽,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등으로 퍼져 나간 14개의 자비의 수녀회와 함께 ‘스트라스부르 빈센트 연합회’를 이루고 있다. 2005년에는 한국 진출 40주년을 맞아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해외선교를 시작해 평신도와의 협력을 통한 빈센트 영성실현의 장을 넓히고 있다. 또한 빈센트 영성 400주년을 기해 2017년 한국빈첸시안 가족위원회를 결성하고,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섬기는 사명 완수에 힘쓰고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