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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 주일 특집] 예로니모 성인과 성경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01-18 수정일 2022-01-20 발행일 2022-01-23 제 327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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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것,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그리스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이해 도와 성경 통해 그리스도 알 수 있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서재에서 연구 중인 성 예로니모’.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9월 30일 자의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를 통해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선포했다. 교서가 반포된 9월 30일은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이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의 본문 비판과 함께 라틴어 번역본을 만들어 오늘날 대중적인 성경이 보급되는 데 초석을 만든 위대한 학자다. 곧 ‘하느님의 말씀 주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성경이 지니는 중요성과 가치를 일깨우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면서 성경에 대한 예로니모 성인의 열정을 살펴보고, 일상 안에서 성경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아본다.

■ 번역을 통한 성경의 대중화

345년경 지금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경계에 있는 스트리돈에서 태어난 예로니모 성인은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견실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이미 어린 시절 당대의 가장 유명한 수사학 교사들 밑에서 수학하며 라틴 고전을 탐독했다.

이후 아타나시오 성인이 전파한 동방 수도생활을 접하고 수덕생활을 철저히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성경 언어 연구에 매진,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익혔다.

안티오키아에서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379년경 콘스탄티노플에서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를 만나 공부를 계속했고, 오리게네스의 강론집을 비롯한 중요한 작품들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을 눈여겨본 성 다마소 교황은 성인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고, 성인은 교황의 독려를 받아 복음서와 시편의 개정 작업에 몰두하는 등 주석가이자, 교사, 영적 안내자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성 다마소 교황의 선종 후 성인은 386년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420년 선종하는 순간까지 그곳에서 성경 본문 연구에 몰입했다.

베들레헴에서 보낸 세월은 성경 연구와 히브리어 원문을 바탕으로 구약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한 기념비적 작업에 그의 삶을 온전히 바친 가장 풍요롭고 강령한 시기였다. 동시에 예언서와 시편, 바오로 서간에 대해 주해하고 성경 공부 안내서를 집필했다.

당시 대다수 서민들은 라틴어를 사용했지만, 성경은 일부 라틴어 부분 번역을 제외하고 모두 그리스어로만 쓰여 있었다. 성인은 번역 작업을 완수하고자 탄탄한 라틴어 소양과 그리스어, 히브리어 지식을 활용했다. 그의 번역은 히브리어 문체에 충실하면서도 라틴어의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그 결과 일반 신자들에게도 성경은 공동의 유산이 됐고, 동시에 신학 용어의 원형을 이루면서 서양 문화사를 특징짓는 기념비가 됐다. 따라서 그가 라틴어로 번역한 성경은 ‘대중적’이라는 의미의 「불가타」(Vulgata)라고 불리게 됐다.

■ 신앙생활에서 성경의 중요성 강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예로니모 성인 기념일에 「예로니모 성인의 선종 1600주년 교서」를 발표하고 “예로니모 성인의 여러 언어 지식 덕분에 그리스도교를 더욱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그리스도교 원전들에 더욱 가까이 가게 됐다”면서 “번역이 없으면 타인은 물론 우리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예로니모 성인은 자신의 학문을 즐거운 여가나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는 수단이자 영적 수련으로 여겼다. 교황은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 안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겸손한 특성을 강조했다”며 “성인이 성경에 헌신한 것은 심미적인 취향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성경이 그를 그리스도에 대한 앎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의 강렬한 어법과 이미지에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만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주님을 위해 자신의 영적 힘을 다 쏟아 내는 종의 용기가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 성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예로니모 성인의 권고는 16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오늘날에도 울려 퍼지고 있다.

“성경을 자주 읽으십시오. 그대의 손에서 거룩한 책을 절대 내려놓지 마십시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