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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내 마음의 세탁기를 돌리며 / 김주후

김주후 요한 보스코,제1대리구 동백성마리아본당
입력일 2022-04-06 수정일 2022-04-06 발행일 2022-04-10 제 328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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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르~ 쿠르르~”

언제부터인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친근하게 들리게 되었다. 때로는 성가시게 다가오기도 했으나, 모터가 돌아가면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귀엽게 보인다. 이리저리 통이 돌아가면서 먼지들을 털어내고 세제를 이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자국들까지 없애주는 그 모습이 신기하게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그냥 적당히는 안 되고 연신 비비고 돌리는 과정을 거치며 온몸으로 부르짖는 모습을 보면 이건 ‘통돌이 악기’라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마음은 세탁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잡다한 지식 나부랭이, 나도 모르게 쌓여버린 옛 기억들, 그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서 괴롭히는 상처들마저 모두 털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여기에 더해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는 마음의 그림자들마저 정리할 수는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띵똥~ 띵똥~”

세탁이 마무리되어갈 때, 마침 따스한 햇살이 드리워지는 시간이 오면 너무 반갑다.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이렇게 찾아와 귀한 빛을 보내주는 태양이 고마울 뿐이다. 그래서 물살에 시달렸던 빨래들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따스한 햇살을 맛보라고 얼른 꺼내서 창가의 건조대로 옮겨준다.

“탁탁, 턱턱”

빨래를 널면서 세탁 과정에서 먼지가 잘 제거되었는지 살피고, 햇살을 더 많이 받았으면 하는 속옷이나 행주는 창가 쪽으로 옮기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마음 속의 먼지도 없애고 나도 모르게 드리운 음습한 부분을 햇볕에 말릴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한다. 의식적인 노력과 묵상 등을 통해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해도 마무리가 안 되는 어두운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탁탁~턱턱 빨래 널고, 툭툭~톡톡 마음 털고.”

저녁 때 아이들이랑 빨래를 갤까? 깔끔하게 변신하고 따스한 햇살까지 먹어치운 빨래의 기운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요즘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 그러고 보니 내 마음의 세탁기는 바로 우리 식구들이었구나! 매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식사도 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먼지는 사라지고, 이렇게 모여 떠들면서 빨래를 갤 때 내 마음의 그림자마저 사라져 버린다.

“여보! 여기 수건들은 빨래하지 않았어요?”

“그건 내일 할게요!”

내일도 마음의 세탁기를 돌려야지!

김주후 요한 보스코,제1대리구 동백성마리아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