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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다시 불러보는 김수환 추기경 / 고계연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입력일 2022-05-03 수정일 2022-05-03 발행일 2022-05-08 제 329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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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3일 고향 집에서 우연히 보게 된 낮방송에 눈길이 꽂혔다. G1방송의 ‘TV 자서전-명의’ 1회로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장 황정기 교수 편이었다. 은평성모병원 내 병원으로 지난해 3월 개원한 이곳은 각막, 간, 심장 등 6개 이식센터를 갖추고 지금까지 190건의 장기이식에 성공했다. 방송에선 황 교수의 의료 철학과 인술을 집중 조명하고 인터뷰했다.

“앞 못 보는 이에게 빛을 보여주고 싶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1990년 안구기증을 서약하고 실제로 2009년 2월 16일 선종과 동시에 두 사람에게 빛을 선물하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매년 7만 명에 머물렀던 기증 희망자는 그해 18만 명으로 급증해 화제가 됐다. 각막 기증을 통해 사랑과 나눔 정신을 온 세상에 전한 그분의 뜻이 살아있음을 다시 느끼게 됐다.

100년 전 우리 곁에 왔다가 13년 전 떠난 김 추기경께서 내달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가톨릭신문 전신인 가톨릭시보사 사장 신부로 기자 역할까지 했던 김 추기경은 언론의 본질을 훤히 아셨고 사명 실천에 앞장섰다. 대중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언론인들을 격려하고 사랑했던 김 추기경을 신간 도서로 만나게 됐다. 「우리 곁에 왔던 성자」가 그 책이다. 전·현직 언론·출판·방송인 등 19명이 원고를 내고 편집까지 도맡았다. 김 추기경을 직접 만났거나 그분으로 인해 삶의 변화를 겪은 다양한 이야기에 특별한 체험과 깊은 감동이 담겼다.

8남매 중에서 아들 둘을 사제로 키운 고(故) 서중하(마르티나) 여사. 7형제 가운데 아들 하나를 신부의 길로 보낸 나의 어머니 고(故) 이순남(데레사) 여사. 필자도 김 추기경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추기경의 신간 도서에 글을 보탰다. 두 분의 어머님 모두 사랑과 희생, 기도와 애덕 실천으로 주님과 교회에 금쪽같은 자식을 봉헌한 것이다. 숱한 역경과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오로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끊임없이 기도했을 터.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 4, 7-8) 복음을 되뇌어도 모성의 위대함은 여전하다.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얘기해야지. 왜 자꾸 과거를 소환하느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시중에 김 추기경 이름이 박힌 책자가 여러 권 있는데, 굳이 또 도서를 내는 이유를 캐묻고 싶은 거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이다. 지난 일을 제대로 알아야 교훈을 얻고 앞날에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1970~80년대 격동기를 헤쳐 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려고 했을 뿐이다.” 김 추기경이 교계 신문 인터뷰에 밝힌 내용이다. 그는 무엇보다 좌측도 우측도 아닌, 오직 하느님 측인 분이었다. 종교계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큰 어른, 사랑 그 자체인 큰 바보, 분위기에 맞춰 소탈하게 유머를 구사했던 분, 가난을 살았지만 인간적인 휴머니스트였던 김 추기경. 추기경님을 다시 불러보는 까닭은 그분의 가르침과 사랑의 정신이 지금 여기에서도 큰 울림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 5월이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 추기경님의 유언이 이달에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가까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이웃에게도 눈길을 돌려보자.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자. 거리두기가 풀렸으니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에도 온기가 돌게 하자.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우리도 달릴 길을 다 달려보자. 김 추기경님의 신앙의 모범을 따라서…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