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어머니의 헌금 / 정호철

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입력일 2022-05-17 수정일 2022-05-17 발행일 2022-05-22 제 329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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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시자 어머니께서는 8남매를 이끌고 도시로 이사했다. 자식들의 공부와 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머니는 객지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우리들을 키우셨지만, 성당에 가실 때면 늘 봉투를 두 개 준비하셨다. 주일 헌금 봉투와 2차 헌금 봉투였다.

어머니가 헌금 봉투에 2000원을 2차 헌금인 예비봉투에 1000원을 넣는 장면을 뚜렷이 기억한다. 어머니가 봉헌금을 반드시 다리미로 다려서 준비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께 왜 돈을 다림질해서 준비하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큰돈은 바치지 못하니 정성이라도 넣어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돈의 가치로 보면 2000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성당에 바치는 헌금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셨다. 홀로되신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꽤 큰돈을 매 주일 봉헌하셨다.

1996년, 다니던 회사에서 미국지사로 발령받아 한동안 뉴욕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나는 개신교에 다니는 한국인들과 자주 교류했다. 성당에 가기가 어려울 때 나도 가끔 개신교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한인으로 산다는 것은 교회 생활을 떼어놓고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교회의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교인들은 서로 밀접하게 의지하고 교류하며 살고 있었다. 목사님들은 구역예배, 가정예배를 통해 신자들과 끊임없이 유대를 강화했다. 신자들의 직장까지 찾아다니며 기도를 아끼지 않았다.

신자들은 고마운 마음을 크게 느꼈지만 십일조 봉헌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회사의 한 직원이 어느 날 나에게 “우리 교회 목사님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공포를 느낄 때가 종종있다”며 목사의 설교를 전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지금 너를 보고 계신다. 너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이 너에게 그 복을 거두시는 날 너는 고통 속에 울부짖게 될 것이니 환난을 피하고 구원을 얻으려면 주님께 얻은 것을 그분께 오롯이 바쳐라.”

그러면서 그는 “우리 목사님은 틈만 나면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니 양심을 속이지 말고 주님의 것은 주님께 바쳐야 한다고 하신다”며 “지금 하는 일이 언제까지 잘 될 것 같으냐? 주님이 불호령 한 번 내리면 모든 것은 헛것이니 십일조를 반드시 지켜 재난을 면해야 한다고 설교를 하는데 신도들이 모두 ‘아멘’ 할 뿐 그 누구도 반론을 펼 엄두도 내지 못 한다”고 전했다. 십일조를 내지 않고 불안에 떠는 것보다 힘들더라도 십일조를 양심껏 바치고 떳떳하게 사는 게 좋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했다.

천주교는 헌금을 강요하지 않는다. 주일 헌금을 명부에 기록하지도 금액을 확인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 교무금마저 십일조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룰은 성당마다 존재하지만 그나마 잘 지켜지는지도 의문이다.

봉헌금은 액수의 고저를 떠나 정성이 중요하다. 나는 봉헌금을 준비할 때 다림질하지도 새 돈으로 바꿔 준비하지도 않는다. 수입을 따져 봉헌금을 계산해보거나 십일조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다.

거리마다 동네마다 넘쳐나는 개신교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십일조의 공포에 불안해하던 개신교 신자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성당에서 봉헌 시간 때가 되면 어머니가 다림질해서 봉투에 넣으시던 50년 전 2000원을 기억하곤 한다.

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