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성소수자를 환대하고 동반하는 교회 / 이미영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5-17 수정일 2022-05-18 발행일 2022-05-22 제 3295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교구 단계가 마무리에 접어드는 가운데,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지난 3월 서울대교구에서 성소수자의 의견을 경청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물론 성소수자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이주민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과정으로 이뤄진 일이지만, 시노드 과정에서 성소수자의 의견을 수렴한 것은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최근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며 한 달 넘게 이어지는 단식농성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더 주목을 받은 듯합니다.

차별금지법은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모든 생활영역에서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으로 2007년 국회에서 처음 발의되었는데,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 항목 중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포함 여부가 논쟁이 되며 입법이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의 여론조사에서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에 67.2%가 ‘동의한다’라고 응답할 정도로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한 사회적 공감대는 넓어졌지만, 종교계, 특히 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치는 그리스도 교단이 앞장서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천주교회 역시 “동성의 성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인정될 수 없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357항)는 가르침에 따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교리서는 “간과할 수 없는 숫자의 남녀가 깊이 뿌리박힌 동성애 성향을 보이고 있다. 객관적으로 무질서인 이 성향은 그들 대부분에게는 시련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2358항)라고도 덧붙입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가톨릭교회의 비전과 방향은 교회가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율법학자가 되기보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형제자매가 되는 길로 나아가자는 초대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최근 교황청 구조개혁안으로 발표된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에서 그동안 교황청 조직에서 수장의 자리에 있던 ‘신앙교리부’ 대신 ‘복음화부’를 가장 우선에 둔 것도 그런 움직임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도 그러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대 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고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하던 여성, 병자, 세리, 창녀, 죄수 등과 가깝게 지내며,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만약 지금 예수님께서 성소수자들을 만난다면 어떻게 대하실까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름으로 성소수자에게 온갖 모욕과 멸시, 혐오의 말과 폭력을 함부로 행하는 모습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물론 교회공동체가 대놓고 성소수자를 혐오하거나 차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환대한다고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성소수자는 비신자 성소수자보다 더 자살 충동을 많이 느낀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주민이나 장애인 등 다른 소수 계층은 교회공동체의 돌봄과 지지 속에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데, 그리스도인 성소수자는 교회의 돌봄은커녕 교리적 비난과 죄의식에 더 고립되고 자기혐오가 깊어져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많이 한다는 겁니다.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을 맞아 육우당(六友堂)이라는 필명 속에 묵주를 여섯 가지 소중한 벗의 하나로 꼽았던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윤현석 안토니오를 기억해 봅니다. 성전환수술로 강제 전역해야 했던 변희수 가브리엘 하사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죽음도 떠오릅니다. 그러한 안타까운 죽음이 자꾸 이어지지 않도록,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에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교회공동체가 함께할 순 없을까요?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