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끝나지 않는 전쟁,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2-05-18 수정일 2022-05-18 발행일 2022-05-22 제 3295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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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대화 호소하는 교황의 요청… 러시아는 응답하지 않았다

2월 개전 후 민간인 수천 명 사망
교황, 전쟁 발발 직후부터 ‘중단’ 호소
전 세계 그리스도인에게 기도 당부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도 요청 중

4월 28일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파괴된 성당 모습. CNS 자료사진

“여러분은 우리들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들을 구해주세요. 죽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급박하게 이어지는 전쟁 상황 속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11일 교황청에서 2명의 우크라이나 군인 부인들을 만났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 자리에서 교황을 만난 두 명의 여인, 카테리나 프로코펜코와 율리아 페두시우크는 ‘마리아의 도시’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항전을 계속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아조프 연대 소속 군인의 부인들이다.

부인들은 남편과 다른 군인들이 러시아군에게 살해되거나 체포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눈물로 교황에게 호소했다. 이들은 2주가 넘게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제철소에 남은 군인과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무릎 통증으로 서 있기도 고통스러웠지만, 교황은 자리에서 일어서 두 여인을 맞아 손을 붙잡고 위로했고, 하느님의 은총을 빌었다.

1350만 명에 달하는 피란민

나흘 뒤인 5월 15일, 핀란드는 나토 가입 신청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같은 날 러시아가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백린탄으로 공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페트로 안드리우시센코 마리우폴 시장 보좌관은 이날 “지상에 지옥이 찾아왔다. 아조우스탈에”라는 글과 함께 러시아군의 백린탄 공격 상황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마리우폴은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있어서 전략적 요충지로 지난 2월 24일 개전 후 가장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한 지역이다. 3월 16일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 1300여 명이 대피해 있던 한 극장이 러시아군의 공습을 받았고, 600여 명이 사망했다. 희생자가 1000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쟁 와중에 잔해에 깔린 유해들을 발굴할 수도 없었다. 극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집단 무덤이 됐다.

유엔이 지난 5월 10일 집계한 우크라이나 전쟁 민간인 사망자는 3381명, 하지만 실제 사망자 규모는 이보다 수천 명 이상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은 특히 마리우폴에서의 민간인 피해 실태는 거의 확인이 안 되고 있다고 전했다. 마리우폴에서는 사망자 규모가 최대 2만여 명에 달한다는 의혹이 나오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군 2000여 명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5월 9일 현재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총 1350만 명에 이른다. 자국을 떠나 국외로 피신한 난민이 580만 명 이상이다. 그 중 90%는 아동과 여성이고 보호자 없이 혼자서 피란길에 오른 아이들도 많다. 국내 피란민은 770만 명이다.

집단학살의 전쟁범죄

유엔인권이사회는 5월 12일 특별회의에서 러시아의 전쟁 범죄 의혹을 조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47개 이사국 중 33개국이 결의안에 찬성했다. 이 결의안에 따라 유엔 인권조사위원회(COI)는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해 러시아군의 민간인 무단 처형과 고문, 아동 학대 등 각종 인권 침해 범죄 의혹을 조사한다. 최종 보고서는 내년 3월 제출된다.

이틀 뒤인 14일에는 처음으로 러시아 군인이 전범 피의자로 우크라이나 법정에 섰다. 민간인 살해 혐의를 인정한 21세의 러시아 군인은 최고 무기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군의 전쟁 범죄 사례로 보고된 건은 모두 1만 건이 훌쩍 넘는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의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선 폐허가 된 거리에 민간인들이 쓰러져 있었다. 러시아군은 키이우에서 철수하면서 무차별적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수백구의 시신들이 한데 묻혀 있는 부차 대학살의 참상은 국제사회를 경악케 했다. 부차뿐만 아니라 보로댠카, 호스토멜 등 키이우 외곽지역 전체에서 집단 학살의 정황들이 발견됐다.

“전쟁을 멈추라” 간곡한 호소

프란치스코 교황은 2월 24일 전쟁 발발 직후부터 줄곧 “전쟁을 멈추라”고 호소했다. 교황은 전쟁 발발 다음날인 25일 교황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한데 이어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다. 또 재의 수요일인 3월 2일을 평화를 위한 기도와 단식의 날로 지낼 것을 호소했고, 13일에는 삼종기도 자리에서 “학살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와 동시에 추기경 2명을 우크라이나 현지에 파견했다. 3월 25일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성심께 봉헌, 평화가 회복되기를 기원했고, 주님 부활 대축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휴전하라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교황의 호소는 끝없이 이어졌다. 4월 24일 하느님의 자비주일에도, 5월 성모 성월을 맞으면서도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가 가져오는 평화를 강조했다. 5월 한 달 동안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했다. 주님 부활 대축일에 교황은 부활 담화를 통해 “제발 전쟁에 익숙해지지 말자”고 당부했다.

대화와 평화

계속되는 교황의 평화에 대한 호소는 현재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당사자들에게서 큰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교황의 전쟁에 대한 깊은 우려와 평화를 향한 의지는 항구하다. 교황은 평화를 위해서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날 의지가 있음을 표명했고, 아직 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접촉을 시도해왔다. 평화 회복을 위한 러시아 정교회의 역할을 기대했던 교황은 키릴 총대주교와의 만남을 취소했다. 현 단계에서 그것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교황은 지금까지 줄곧 전쟁 중단을 호소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거명하면서 비난하지는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황청 외무장관 폴 갤러거 대주교는 “교황은 대화와 평화라는 근본적인 목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즉, 교황청의 소명은 어느 한쪽 편에 서기보다는 대화를 증진하고 모두 함께 평화와 이해를 통해 이번 전쟁을 끝낼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는 말이다.

교황은 가장 먼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통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또한 참혹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대화와 평화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깊은 근심에 빠져 있다.

지난 2019년 7월 4일 바티칸에서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과 푸틴 대통령. CNS 자료사진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