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성령 강림 대축일 -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입력일 2022-05-30 수정일 2022-05-31 발행일 2022-06-05 제 329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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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사도 2,1-11 / 제2독서  1코린 12,3ㄷ-7.12-13 / 복음  요한 20,19-23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
각자 다르지만 서로 사랑 나누며
상대방을 섬기고 진심 다한다면
공동체에 성령 임하시게 될 것

요제프 이그나츠 밀도르퍼르 ‘성령강림’ (1750년대).

저마다 자기 언어로

오늘 독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모인 사람들은 사도들의 말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습니다.

예전에 프랑스에서 2주일간 연수할 때가 떠오릅니다. 30여 개국 사람들이 모였었는데요. 그때 모인 사람들도 회의하는 내용을 각자의 언어로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회의 내용을 각자의 언어로 알아듣고 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와 같지 않은가.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신 것이 아닌가!”

그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예상하시겠지만 여러 통역사가 있었습니다. 전문적으로 통역하는 분들은 아니고, 여러 언어를 하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봉사를 하셨습니다. 두세 가지 언어를 하는 사람이 한 가지 언어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 옆에서 통역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하시는 선교사 신부님이 계셨고요. 세 가지 언어를 하는 레바논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아랍어로 통역을 해 주었고, 네 가지 언어를 한다는 자매님이 브라질 사람에게 회의 내용을 통역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공동체 안에 여러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서로를 위해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했을 때, 오순절에 보았던 놀라운 일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도 각자의 은사를 나눈다면,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각자의 은사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어떤 신학교에서 설교학 시간에 실습을 했답니다. 한 신학생이 처음 자기 순서가 돼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긴장이 돼서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얼떨결에 입을 연 그는 “여러분,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아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청중들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학생은 “여러분이 모르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하고 내려왔습니다.

속상한 교수는 다음 날도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학생은 또 할 말을 잃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아십니까?” 그때 학생들이 웃으면서 “다 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그 학생은 “여러분이 다 아는 것을 제가 말할 필요는 없지요”라고 말하고 강단에서 내려왔습니다. 화가 난 교수가 그 다음 날에도 다시 그를 강단에 세웠습니다.

다음날 이 학생은 또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제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아십니까?” 이때 학생들은 웅성웅성 하면서 안다는 학생도 있었고 모른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때 이 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 주십시오”라고 했답니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라는 말이 공동체에 필요합니다. 공동체에는 먼저 들어온 분들도 있고 나중에 들어온 분들도 있을 텐데요. 먼저 들어온 분들이 나중에 들어온 분들에게 아는 것을 나눈다면, 새로 들어온 이들이 공동체에 적응하고, 하나 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내가 신앙 안에서 체험한 좋은 것들을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 전하고 알려 준다면, 많은 이들이 올바른 길로 들어설 겁니다.

내 눈에 보이는 일

예전에 「행복의 수레바퀴」 저자 송길원 교수가 쓴 글을 보다가, 은사가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좀 길지만 인용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늘상 궁금해 하는 게 있다. 하느님이 주신 나의 은사는 무얼까? 하지만 뜻밖에도 너무 간단하게 은사를 알 수 있다. ‘내 속에서 생겨나는 상대방에 대한 불평과 불만, 바로 그것이 자신의 은사인 것이다.’ 일테면, 내 아내는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종이 나부랭이가 나뒹구는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편한 게 없다. 오히려 밟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는 금방 불편해진다.

이 말은 내가 아내보다 정리정돈에 탁월한 은사가 있다는 증거다. 하느님은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상대방의 마음을 박박 긁어 놓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무기로 사용하라는 데 있지 않다. 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다. 바로 그때,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아내한테는, 화장품 뚜껑 여는 은사가 있고, 나에게는 그 뚜껑 닫는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아내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었다. 아내가 화장한다고 앉아 있으면, 내가 다가가 물었다. ‘여보, 이거 다 썼어? 그러면 뚜껑 닫아도 되지. 이거는? 그래, 그럼 이것도 닫는다.’ 이제는 내가, 뚜껑을 다 닫아 준다.”

이렇게 은사를 나누는 일은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 내 눈에 보이는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이겠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구역 내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독거노인이나 결손가정 아이들, 그리고 병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주일학교 아이들이 간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장비가 없어서 교육을 못 받는 걸 볼 수도 있겠죠. 내 눈에 보이는 일을 시작하고 섬길 수 있다면, 우리 공동체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