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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화해를 믿는 희망 / 강주석 신부

강주석 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2-06-07 수정일 2022-06-08 발행일 2022-06-12 제 329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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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한 정권을 용서할 수 없는데, 미국은 왜 자기 마음대로 북한과 대화를 하는 건데요?”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던 때, ‘평화의 봄바람’을 달가워하지 않는 어느 북한이탈주민의 주장이었다. 사실 북한이탈주민들과 남북문제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 때문에 종종 불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몇 차례의 강제 송환을 경험했던 그가 보기에는 북한 정권과 ‘평화적으로’ 협상하는 것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일이었다.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까지도 반대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적대적인 분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화해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제3차 평화의 날 담화(1970년)에서 용서와 화해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용서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인간의 정치에는 부조리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자연의 경제에서 정의는 종종 용서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리스도교의 경제에서 그것은 부조리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그러나 부조리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말씀도 하셨다. “세속에서 갈등은 어떻게 마무리됩니까? 분쟁들은 궁극적으로 어떤 평화를 가져옵니까? 정욕, 자만, 증오로 채워진 인류처럼, 음흉하고 분노에 가득 찬 역사의 변증법 안에서, 어떤 갈등을 종식시키는 평화는 강제적인 부과, 억압, 멍에가 됩니다. 더 약한 자들과 더 순종적인 집단에 관용이 강요되는 것이며, 복수가 미래로 연기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적의가 남겨진 마음 안에 단순히 위선을 감춰 둔 협정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너무 자주 기만당하고 불안정한 이러한 평화는 가장 완전한 해결책을 놓치고 맙니다. 가장 완전한 해결책은 용서입니다.”

폭력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화해와 용서를 통한 평화는 불가능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각자의 삶에서 부딪히는 원한들도 용서하기 어려운데, 더군다나 인류에게 고통을 주는 구조적인 악의 현실은 화해를 향한 우리의 희망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힘의 균형을 넘어서는 진정한 평화는 마치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자비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도 화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우리 민족이 증오와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더 간절히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