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하늘나라의 교육(마태 13,52) / 전용혜

전용혜 로사,제2대리구 서판교본당
입력일 2022-06-08 수정일 2022-06-08 발행일 2022-06-12 제 3298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하느님과 씨름하던 야곱은 어떻게 이스라엘이 되었을까? 하느님의 존재 증명이라는 명제를 안고 교구 하상신학원에 입학한 나는 ‘교회적 정의’(定義)들에 관한 교의신학 교재 머리말에 집중했다. ‘신앙의 변증법’, 이론과 실천의 종합이라는 책의 표제는 신앙의 이해를 돕는다고 적혀있었다. 글자가 낱낱의 뜻을 갖는 한자와 신학 용어들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러나 주어진 과제임은 분명했고, 고통이라는 걸림돌이었고, 넘어서야 할 산이었다. 여전히 지금도 앓는 ‘생손앓이’다.

수업이 끝나면 몸살을 앓듯 온몸이 아팠고 신경은 곤두섰다.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처럼 느껴졌고, 익숙한 것들과 분리불안은 자신을 고립시켰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해방(解放)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어 그 꼭대기를 오르내리고 있음을. ‘하늘의 문’(창세 28,17)에 이르는 길을 걸음걸음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실재(實在) 없는 ‘하느님 부재’는 시험에 들게 하였다. 끝없는 담론을 낳고 누구의 중재나 충고도 답이 되지 않았다.

쉼 없이 ‘살갗은 갈라지고’(욥 6,12) 조각난 삶의 형식 앞에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었다. 침묵하는 법을 학습한 시간이었다. ‘언어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보기 시작한다’는 영화 ‘위대한 침묵’의 포스터에 적힌 로그 라인(log-line) 그대로, 세상과 창조주 하느님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비로소 듣게 되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 42,5)

하느님 증명의 기술(記述)은 질서정연했다. 아무런 반박할 수 없는 논리와 ‘신앙은 지식과 구별된다’는 야스퍼스(K. T. Jaspers, 1883~1969)의 말은 미개(未開)한 나의 지식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다른 책은 거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하느님과의 소통이 급했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했다. 성경 73권, 모두 각 권의 목차를 정리한 「성서 속 작은 목차집」이란 책을 만들어 천주 강생 2002년 성탄에 봉헌하였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거룩한 밤이었다.

당시 본당 주임신부님께서 책 속에 이렇게 적으셨다.

“그리스도의 평화, 전용혜 로사 자매님, 성서 목차집을 협력자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노력하여 발간하게 됨을 축하하며 본당신부로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더욱더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는 나날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한눈에 하느님 세상을 듣고 보게 되다니,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왔다. 또 훗날 깨달았지만 성경의 어떠한 목차대로 신앙을 체험해도 말씀은 발의 등불이 되었다. 비유의 끝 말씀이 뜻하는 가르침을 조금씩 알아듣게 되고 그렇게 말씀은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52) 아멘.

전용혜 로사,제2대리구 서판교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