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 주님, 저희가 안아 드릴게요!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입력일 2022-06-21 수정일 2022-06-21 발행일 2022-06-26 제 330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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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1열왕 19,16ㄴ.19-21 / 제2독서  갈라 5,1.13-18 / 복음  루카 9,51-62
주님께 진정한 힘이 되고자 한다면
온전하고 복된 믿음의 삶 살아야
교황님과 하나 되어 굳게 기도하고
하느님께 ‘쉼’ 선물하는 신앙인 되길

베르나르디노 푼게 ‘채석장에서 샘물을 발견하는 교황 성 클레멘스 1세’ (1498~1501년).

강론을 준비하면서 ‘교황 주일’이라는 사실만으로 기뻤습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교황님께서 휠체어를 사용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저렸습니다. 아, 할 수만 있다면, 업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만큼은 꾸준히 바치던 기도 제목을 내려놓고 오직 교황님의 건강과 교황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것’을 이루어주시기를 청하겠다 마음먹습니다.

어떤 기도로 하루를 여십니까? 엉뚱한 생각이지만, 가끔 미사에서 봉헌되는 지향을 보며 갑갑할 적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이 고작, 이리도 작고 소소한가?” 싶은 겁니다. 크고 원대하고 비할 데 없이 은혜로운 주님의 사랑을 기껏 자녀의 성적을 위해서 소비하고 고작 취업을 목표로 쏟아붓고 건강한 몸을 위해서 허비하는 게 너무 아까운 겁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의식주의 걱정과 염려에 매달리는 것은 “믿음이 약한” 증거라 하셨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라고 똑 부러지게 일러주셨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종교를 불문하고 수십억 인구는 모두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살아갑니다. 신중의 신이신 주님께서는 그 고만고만한 청원을 총괄하실 테니, 얼마나 피곤하실까 싶습니다. 너도나도 이런저런 잡다한 것을 소원해대는 통에 주님의 귀는 소란스러움에 지쳐 골이 지끈거릴 것도 같습니다. 하물며 하느님의 자녀로 등극한 그리스도인의 기도 안에서도 당신의 뜻과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간절함이 없다면 예수님의 외로움은 극에 달할 것이라 싶습니다. 시급히 바치는 화살기도도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는 질긴 기도마저도 죄다 ‘급출세’ 전략일 뿐일 때, 예수님께서는 다시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며 쓸쓸함을 토로하실 것만 같은 겁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통틀어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라는 문장을 제일 슬프게 여깁니다. 그리고 오늘 듣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는 주님의 고백은 읽을 적마다 마음에 통증을 느끼는 아픈 구절입니다. “머리 둘 곳조차 없다”라는 주님의 읊조림 속에서 외양간에서 시작된 가난의 여정을 만나고 사랑으로 당신의 전부를 내던지셨음에도 철저하게 거부당하신 하느님 아들의 고독을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때문에 이 구절을 대할 때마다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예수님을 위로해드릴 수만 있다면 못 할 것이 없다’라는 기특한 다짐을 하곤 합니다.

당시의 주님의 인기는 급상승 중이었습니다.(마태 8,18 참조) 그러나 그들의 환호는 단지 병이 낫고 빵을 거저먹은 기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께서는 수많은 제자 안에서도 외로우셨습니다. 그들의 이기적인 마음가짐은 주님의 진심을 알고 난 후, 일언반구도 없이 돌아서버리는 모습에서 드러나는데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뒷걸음질을 치는 제자들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심정이 어땠을지요. 남은 제자가 고작 일흔두 명에 불과했을 때,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롭고 처량했을지요.

문제는 지금 교회 안에도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내 것을 챙기는 수단으로 삼는 ‘어떤 사람’이 존재하는 한 주님은 외롭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무늬만 신자인 사람들 탓에 예수님은 오늘도 머리 둘 곳조차 없이 힘드십니다. 이러한 군중은 아무리 많아도 주님께 힘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삶에는 의외의 변수가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수많은 문제성과 대치하기 위해서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고 주님께 의지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직 세상의 이치에만 마음이 묶여서 복음적 사고방식을 뒷전으로 한다면 슬프고 아픈 일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오히려 주님의 속을 답답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깊이 새기지 않는다면 야고보와 요한처럼 일상의 성급함에 사로잡혀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라는 수준 이하의 기도로 예수성심을 기진하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지금 모든 그리스도인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시간의 가혹함에 압도되지 않는 지혜를 선물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렇게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주님의 온기가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성심의 뜨거운 온기를 지녀서 마음에 흉터를 지닌 채 앓고 있는 이웃을 보듬어 위로하며 용기를 선물해주는 복된 믿음의 삶을 살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과 하나 되어 우리 예수님의 성심께 쉼을 선물해 드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특별한 제안을 드리려 합니다. 교황 주일인 오늘 하루만이라도 자신의 것을 깡그리 내려놓고 오직 교황님의 ‘6월의 지향’에 일치해주시길 강권하려 합니다. ‘매일미사’ 첫 장에 실려 있는 교황님의 지향에 마음을 모아 탄탄한 기도의 탑을 쌓아주시길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황님의 기도에 힘을 실어드릴 때, 주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의 청원에 응답해주지 않고는 못 배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예수 성심 성월에 바치시는 교황님의 기도 지향이 ‘전 세계 그리스도인 가정들이 일상생활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고 체험하여 성덕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니 진정 모두에게 복된 일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부디 이 주간, 교황님과 하나 되어 주님께 쉼을 선물해 드리는 은혜인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