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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박해와 학살 / 강주석 신부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2-06-21 수정일 2022-06-21 발행일 2022-06-26 제 330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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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의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사들은 6·25전쟁 초기부터 박해를 받았다. 1950년 6월 27일 콜리어 신부가 총살당했으며, 7월 2일에는 퀸란 몬시뇰과 캐너밴 신부가 주일 미사 중 체포됐다. 7월 4일에는 매긴 신부가 체포돼 7월 7일에 총살당했고, 7월 6일에는 크로스비 신부가 체포됐다. 라일리 신부는 7월 12일에 체포돼 7월 말에 피살됐다.

퀸란 몬시뇰, 캐너밴 신부, 크로스비 신부는 춘천에 억류돼 있다가 7월 16일 서울로 호송됐다. 남한에서 북송된 뒤 중강진까지 이르는 ‘죽음의 행진’을 겪은 이들 중 캐너밴 신부는 1950년 12월 6일 폐렴으로 병사해 압록 강변에 묻혔다.

1953년 6월에 석방된 크로스비(한국명 조선희) 신부는 선악이 구분되지 않는 비참한 전쟁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수기에는 민간인 학살의 정황도 언급되는데, 전쟁 발발 직후 그를 찾아온 한 소녀가 공산주의자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체포된 20여 명 가운데 절반이 근방 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그들(시신들)의 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머리에는 총알구멍이 있었다. 소녀의 오빠가 포함된 나머지 절반의 운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소녀의 오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성적이고 부지런하며 매우 호감이 가는 청년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가 공산주의와 관련된 것은 일본의 한국 통치가 끝난 직후의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중략) 그 이후 공산주의자들이 소요를 일으킬 때마다 그는 체포됐고 위기를 넘길 때까지 당연한 일처럼 투옥됐다.”(조선희 신부 「기나긴 겨울」 38~39쪽)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최근 예수회 간행물 편집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선악의 흑백논리로 평가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빨간 모자(Little Red Riding Hood)는 좋고 늑대는 나쁘다는 일반적인 패턴에서 벗어나야 하며, 여기에는(전쟁에서는) 형이상학적 선인과 악인은 없다”고 역설하셨다.

매해 6월 25일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기념하는 한국교회는 비참한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면서 미사를 봉헌한다.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이 땅에서도 단죄를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